[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8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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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그러자 관원은 다시 머리를 숙이며 고쳐 말했다.

"그러면 부귀를 더욱 얻으십시오."

요 임금은 다시 대답하였다.

"부귀를 얻는 것도 원치 않소."

"그러면 아들을 많이 얻으십시오."

"나는 그것도 원치 않소."

요 임금은 대답했다.

"나는 많은 아들도 원치 않소. 아들이 많으면 그 중에는 반드시 못난 아들도 생겨나와 걱정의 씨앗이 되고, 부귀를 얻으면 쓸 데 없는 일이 많아지니 번거롭고,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은 법이오."

아버지 김균정의 말은 요나라 임금이 말하였던 '오래 살면 욕된 일이 많은 법'이라는 '수즉다욕(壽則多辱)'을 인용한 말이었던 것이었다.

"하오나 아버님."

김우징이 빙그레 웃으며 말하였다.

"아버님은 그 관리가 요나라의 임금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였던 것을 잊으셨나이까. 관원은 이렇게 말하고 홀연히 신선이 되어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요나라 임금이 성인이라 하더니 그저 군자(君子)에 불과했구나. 아들이 많으면 각각 제 분수에 맞는 일을 맡기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재물이 늘면 그 늘어난 만큼 남에게 나누어 주면 될 것이 아닌가. 진정한 성인이란 메추리처럼 거처를 가리지 않으며, 병아리처럼 아무 생각 없이 잘 먹고, 새가 흔적 없이 날아다니는 것처럼 자유자재해야 하는 법이다. 그렇게 한백년 살다가 세상이 싫어지면 신선이 되어 흰 구름을 타고 옥황상제가 계시던 곳에서 노닌다면 좋겠거늘'하고 말입니다. 아버님이야말로 군자가 아니고, 성인이시지 않으시나이까. 그런데 어찌하여 벌써 수즉다욕이라고 말씀하시나이까."

"우징아."

다정하게 아들을 부르고나서 아버지 김균정은 말을 이었다.

"일찍이 한나라의 무제(武帝)는 분하(汾河)의 강에서 배를 띄우고 군신과 더불어 술을 대작하면서 '추풍사병서(秋風辭竝序)'란 시를 지었느니라. 그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으니라.

'가을바람이 일어 구름 날리니

초목은 시들어 떨어지고

기러기떼 남쪽으로 날아가는구나.

그윽한 향기의 난이여, 국화처럼 어여쁜 그대를 생각하여 아직도 잊지를 못하네.

나룻배 띄워 분하를 건너며

중류를 비켜가자니 흰 물결이 일어난다.

퉁소와 북을 울리며 옛 노래를 부르나니

환락의 지극함이여, 비애가 많도다.

젊음이 몇 때이랴, 늙음을 어찌하리.'

우징아, 무제가 노래하였던 것처럼 '환락극혜 애정다(歡樂極兮 哀情多)', 즉 '환락이 지극하면 비애가 많은 법'이며, 요나라의 임금이 말하였던 것처럼 '수즉다욕', 즉 '오래 살면 욕되는 일도 많은 법'인 것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오래 살고 싶지도 않고, 더 이상의 지극한 환락도 필요치 않느니라. 이만하면 살만큼 살았고,누릴 만큼 누렸음이다. 그러나 너는 아니지 않느냐. 너는 아직도 충분히 젊고, 젊음의 한 때가 아닐 것이냐. 그러니 만일의 일을 반드시 대비해 두어야 할 것이 아니겠느냐. 위흔이를 무진의 도독으로 전임시키거라. 위흔이는 영특하고, 걸출한 아이다. 언젠가는 너를 도와 반드시 결초보은 할 것이다."

먼 훗날의 일이지만 아버지 김균정의 예언은 그대로 적중된다.

김우징은 바로 김양의 힘을 입어 그로부터 9년 뒤 신라의 제45대 신무왕(神武王)으로 등극하는 것이니 사람의 일이란 이처럼 한 치의 앞도 미뤄 짐작할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김우징은 아버지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몇달 뒤 김양은 중원소경의 대윤에서 무진의 도독으로 전임되었다.

이에 관해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

"…김양은 중원의 대윤에 임명되었다가 조금 후에 무진의 도독으로 옮겼는데 맡는 곳마다 정무를 잘 다스려 명성이 있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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