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반미 감정과 균형감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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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근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주한미군기지의 일부를 반환받기로 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차세대 전투기사업(FX)과 관련한 'F-15K 구매압력설'은 반갑지 않다. 우리측의 불만을 살 만한 미국정책이 반드시 반미감정을 야기한다고는 볼 수 없으며 안보를 위해 우리가 주한미군에 제공해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한국 지식인 성향에 주목

그러나 미국의 대외정책에 대한 불만이 장기적으로 쌓이면서 반미감정은 특정의 정치적 행동을 정당화하는 이념이나 생활의 한 양식으로서의 정치문화로 발전하는 심각한 경우를 우리는 세계 여러 곳에서 보고 있다.

9.11 미국 테러참사 이후 반미감정은 과거와는 전연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국제정치의 핵심문제로 급부상했다. 강도와 본질에 있어 이슬람 과격파들의 그것과는 다르지만 한국에서도 반미감정은 상승하고 있다.

한국의 반미감정은 소수 학생과 지식인 등에 국한된 현상이라는 견해가 그동안 우세했지만 이렇게만 볼 문제는 아닌 것으로 판단된다. 필자의 최근 조사에 의하면 우리의 반미감정은 이제 신중히 접근해야 할 이슈임을 말해준다. 서울 5개 대학 학생 5백76명을 대상으로 한 이 조사에서 반미감정이 '아주 높다' 또는 '높다'라는 응답은 53.6%,'보통'은 39.8%,'낮다'와 '친미적'이라는 응답은 모두 6.6%에 불과했다.

중요한 점은 이 대학생들이 곧 우리 사회의 지도층을 형성하게 되면서 한.미관계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대학을 나와 현재 사회활동을 하는 지식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반미정서를 표출하고 있으며 워싱턴의 분석가들도 이런 경향의 심화현상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예컨대 올 2월 13일자 본란에 기고한 미국 동아시아안보연구소의 에릭 맥베이든 제독도 한국 지식인들의 반미성향 강화추세를 지적했다.

한.미관계 역사를 보면 1970년대 말께까지만 해도 남한의 대학생들은 주한미군의 역할을 매우 긍정적으로 보았다. 예컨대 고려대가 76년 발표한 한 조사에서 우리 대학생들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공헌 가운데 군사동맹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다.

80년 이후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반미감정의 주요요인들은 미국의 한국 군사정권 지지, 분단의 원인, 의존성 조장, 미국문화에 대한 거부감 등이다.

그러나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오늘날 이런 이유들은 지엽으로 밀려났다. 대신에 매향리 사격장, 환경오염, 행정협정 문제 등 주한미군과 관련된 것들이 압도적인 54.7%를 차지했고 미국의 강경한 대북 태도(12.5%), 미국식 세계화에 대한 반발(11.9%) 등이 반미정서의 주요인으로 드러났다.

주한미군의 '상당한 필요성'을 인정한 응답은 25.5%인 반면 59.1%는 필요성 인정에 소극적이었으며,'불필요'라는 응답도 15.4%였다. 조사결과는 주한미군 철수 주장이 극소수 학생들에게만 한정된 것으로 단정할 수 없음을 말해준다. 70년대 말까지 가장 중요한 우방의 군인들에게 한국 대학생들이 보냈던 신뢰와 친절은 크게 약화됐으며 앞으로 세대변화와 더불어 이런 추세는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론 존중하는 미국 정치

여론을 존중하는 미국 정치의 성격에 비춰 반미감정이 높아지면 주한미군은 철수할 것이다. 긴밀한 안보협력은 양국의 공동이익에 중요하다. 다행히 조사결과는 반미감정이 아직 정치문화로 뿌리내린 것은 아니며 미국의 정책에 대한 불만의 표출 차원임을 보여준다.

미국은 대한(對韓)정책이 한국인들의 폭넓은 지지를 얻어야 자국의 이익에 유익하다는 점을 깊이 성찰해야 한다. 예컨대 보잉사 제작의 F-15K 전투기 구매 여부는 한국의 자주적 결정을 존중해야 미국의 장기적 국익에 기여할 것이다.

우리 정부도 한국의 안보에 미국의 역할이 여전히 중요하다는 점을 더 많은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증가하고 있는 반미감정은 미국과 한국의 대외정책 양자에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높은 균형감각의 발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언론과 시민사회도 좌와 우 어느 쪽으로든 치우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安瑛燮(명지대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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