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소세 왜 낮추나] 경기 활성화 처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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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와 민주당이 특별소비세를 인하하기로 합의한 것은 침체된 경기를 살리기 위해 내수를 진작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특소세를 내리면 그만큼 물건 값이 싸지고,물건을 사는 사람도 늘어나리란 생각에서다.

경기를 북돋우기 위해 세금 감면과 재정의 조기 집행을 함께 한다는 방침인데, 특소세는 다른 세금에 비해 인하 효과가 시장에서 즉각 나타나는 장점이 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에도 승용차.TV.냉장고의 특소세율을 낮췄었다. 특히 이번에는 고가품인 보석.모피 등을 포함해 특소세율을 내릴 만한 품목을 거의 망라함으로써 당정이 '큰 결심'을 했다.

당정은 수출이 여덟달째 줄어드는 상황에 세계 경기가 테러 사태로 더 나빠지고 있어 내수 진작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소비 수준을 가늠하는 지표인 도소매판매 증가율은 2분기 4.4%,3분기 4.7%로 낮은 수준이다. 경기 불황의 여파로 월급이 제자리 걸음으로 주머니가 가벼워진 데다 지레 씀씀이를 줄이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금리가 낮아져 이자로 생활하는 사람들도 형편이 어려워졌다.

재계는 기업도 살고,내수도 살리자며 특소세 인하를 요구해왔다. 상공회의소는 최근 에어컨.온풍기.레저용품 등의 특소세를 면제해달라고 재정경제부에 건의했다.

특소세는 말 그대로 특별한 물건(또는 서비스)을 살 때 붙이는 세금인데, 생활 수준이 높아지면서 에어컨.자동차 등이 무슨 특별한 물건이냐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특소세법이 77년 시행된 뒤 정부가 대상 품목과 세율을 낮춰왔지만, 정부로선 물건 값에 포함돼 거두기 쉽기 때문에 특소세율을 여간해 고치려 들지 않았다.

정부는 가격을 내리면 사겠다는 사람들이 바로 늘어날 만한 품목을 대부분 세율 인하 대상에 포함했다고 설명했다. 승용차와 에어컨이 그런 경우다.

승용차는 한.미 자동차협상에 따라 특소세 기본세율에서 30%를 깎은 세율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번에 28.5%를 더 낮추는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한.미 자동차협상 때 미국이 자동차에 대한 특소세 인하를 요구해올 것을 의식해 이번 인하를 협상카드로 쓸 수 있다는 생각도 하고 있다.

이번 인하로 현대차 그랜저XG의 경우 가격이 1백20만원 하락한다. 단 승용차의 특소세율 인하는 1년만 한시적으로 적용한다.

특소세율 인하가 시행될 때까지 물건 사는 것을 미루는 부작용도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당정은 특소세법 개정안을 일반 세법 개정안과 별도로 국회에 상정해 서둘러 통과시켜 시행 시기를 앞당기기로 했다. 99년에도 12월 3일부터 시행한 적이 있다.

한편 유흥업소 음식값에 20%가 붙는 특소세를 2년간 면제하는 안은 지난 9월 정부의 세법 개정안에도 포함된 것이다. 재경부 관계자는 "지난 7월부터 술을 구입할 때 주류구매전용카드 사용을 의무화함에 따라 매출이 노출되는 유흥업소의 세금 부담이 급격하게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당정 협의대로 특소세율을 낮추면 연간 8천4백억원의 세수(稅收)가 줄어든다. 정부로선 이 세금을 거둬 예산으로 쓰기보다 제품가격을 낮춤으로써 소비를 늘리는 것이 경기진작에 더 보탬이 된다고 보고 있다.

고현곤.정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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