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스토리] 한국판 피카추 마케팅 '탑블레이드' 대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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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13일 정오쯤 신세계 이마트 성수점.서너명의 주부들이 화난 표정으로 매장 직원을 다그쳤다.

"일주일째 팽이를 사러 왔는데 아직 하나도 구하지 못했어요. 물건을 딴 데 빼돌린 것 아닌가요."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아침에 물건을 내놓기 무섭게 팔려 버리니 저희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SBS가 방영 중인 만화영화 '탑블레이드'(팽이란 뜻의 '톱(top)'과 칼날을 의미하는 '블레이드(blade)'의 합성어) 열풍이 거세다. TV 시청률을 끌어올리는가 하면 영화제목과 이름이 같은 팽이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어린이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특히 이 만화영화는 제작과 캐릭터 개발 초기 단계에서부터 국내 기업들이 자금을 대고 기획 작업에 참여했다. 비록 일본과 공동 제작이긴 하지만 한국도 세계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애니메이션과 캐릭터를 개발한 것이다. 미국의 디즈니.워너 브러더스의 다양한 캐릭터, 일본의 포케몬.디지몬을 부러워하던 시절에서 벗어나 우리의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도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 탑블레이드 인기 상종가=TV 방송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과 기획이 모두 한.일 합작이다. SBS와 일본 TV도쿄 방송국이 기획하고 국내 완구 제작사인 ㈜손오공(http://www.sonokong.co.kr)이 제작금액의 30%인 20억원을 투자했다. 제작에는 한국에서 손오공의 자회사인 서울애니메이션 등 3개 업체가, 일본에서는 매드 하우스 등 2개 업체가 참여했다.

영화와 같은 이름의 팽이도 한국과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고 있다. 한 세트에 8천~9천원 하는 이 제품은 예전 팽이와 달리 줄을 당기면 팽이가 발사되는데, 속도가 빠르고 조합하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변신하는 게 특징이다.

◇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대박=완구제조 업체인 손오공이 제작비를 대는 조건으로 국내 완구의 제조.판매권과 캐릭터 사업권을 가지고 있다. 이미 미국.캐나다 지역의 방영권은 미국 N사에, 완구판매권은 미국 H사에 파는 방안도 성사 단계에 이르렀다.

손오공의 최신규 사장은 "유럽.아시아 시장에도 판매하는 계약을 추진 중"이라며 "로열티가 1천억원대에 이를 전망이어서 한국측이 30%에 해당하는 3백억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영화 주인공들이 가지고 노는 팽이 '탑블레이드'는 판매점에서 구경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손오공 관계자는 "지난달 5일 첫 제품을 출시한 이래 1백20만개가 팔렸다"고 밝혔다. 물량이 달리자 모방제품도 쏟아지고 있다.

'베이블레이드'라는 제목으로 올 초부터 TV에 방영된 일본의 경우 탑블레이드의 인기가 포케몬을 능가할 정도다. NHK 등 일본 매스컴이 연일 탑블레이드 관련 특집을 내놓고 있으며 일본인들의 수집 열기와 맞물려 지난달까지 1천7백만개의 팽이가 팔렸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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