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 으슥한 서가 한구석
아주 오래된 책 한 권을 꺼내 들춰 본다
먼지에 절고 세월에 닳은 책장을 넘기니
낯익은 글이 눈에 들어온다
아,전생에 내가 썼던 글들 아닌가
전생에서 전생으로 글은 굽이쳐 흐르고
나는 현생의 한 끄트머리를 간신히 붙잡고 있다
한 세월 한 세상 삭아 가는 책에 얼굴을 박고
알 수 없는 나라의 산과 들을 헤매다 고개를 드니
낡은 선풍기 아래 졸고 있던 주인이 부스스 눈을 뜨고
이제 문 닫을 시간이라고 말한다
인생은 짧고 낮잠은 길다
-남진우(1960~) '낮잠'중
교육부 장관님(문화부 장관님도 함께 보십시오), 저희들이 헌 책방에서 '먼지에 절고 세월에 닳은 책장'을 넘기던 시절이 전생이었습니까 아니면 전생의 전생이었습니까?
우리가 교실의 교과서, 과외시간의 참고서, 독서실의 문제집, 수험장의 시험지, 교보문고의 베스트셀러 속에서 붙잡고 있는 이 '현생의 한 끄트머리' 저 반대쪽의 옛날 옛적에는 '독서'라는 전설적 시대가 있었다지요. 긴 낮잠에서 깨어나니 벌써 문닫을 시간, 마지막 과외비를 납부하고 수능시험 치를 기회를 마련해 놓으셨군요.
김화영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