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이스탄불 비엔날레'를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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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5면

1천6백여년의 역사를 갖는 유적지 이스탄불에서 지난 9월 22일 일곱번째 비엔날레가 시작됐다.

11월 17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를 맡은 일본인 큐레이터 하세가와 유코는 '에고퓨갈(egofugal)'이라는 주제를 내세움으로써 21세기의 시작을 제안하고있다.

세계사적인 시야를 담는, 자못 거창하고 의욕에 찬 제목만큼 전시는 미래사회의 풍경을 바라보는 듯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메인 전시장으로 쓰이는 톱카프 궁전 안의 옛 동전 주조공장 건물로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뜰 안에 놓인 거대한 우주선 모형이다.

핀란드 출신의 미카 타닐라는 이 작품을 통해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원하는 어떤 장소라도 옮겨가며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미래식 주거공간을 얘기하려 한다.

또한 우주 공간에서의 인간의 고립된 상황을 보여주는 데이비드 누넌의 영상설치물과 에일리언들의 삶의 시공간을 다이내믹하면서도 그로테스크한 터치로 그려낸 망누스 발린의 디지털 애니메이션, 사이보그의 사랑을 비극적으로 그려낸 커닝햄의 뮤직 비디오, 압도적인 분위기의 묵시록적인 영상물을 제시한 오다니 모토히코의 이미지 등이 미래에 대한 화두로 등장한다.

하지만 미래 테크노 사회의 얼굴은 왠지 어둡고 우울하며 창백하게 비쳐진다.

특히 절망과 파괴의 미학이라 할 일본 SF 애니메이션을 자신의 작품과 함께 설치한 한국 작가 이불의 연출에서, 마치 유령과도 같은 이미지의 일본 캐릭터를 가지고 극단의 허무감과 진공상태를 드러내는 곤잘레즈 포에스터의 영상에서도 동일한 느낌이 모아진다.

그런 느낌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어쩌면 미래에 대한 공포감 같은 것이 사회적 맥락이 제거된 채 묘한 미학주의로 대체되면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외에도 유적지의 공간과 잘 어우러지는 작품을 발견하는 기쁨이 있다. 이를테면 천장이 높고 광대한 공간감을 주는 하기아 에레네 성당에는 그에 걸맞게 건축적인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터키 작가 케말 왼소이가 스티로폼을 가지고 쌓아올린 너무도 아름다운 탑은 마치 하늘로 올라가는 계단과 같은 종교적인 이미지를 준다. 넓은 홀에는 대만 작가 마이클 린의 마루가 설치되어 관람객은 마루 위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전체 공간을 바라볼 수 있다.

서기 562년 비잔틴 제국 시절 건축된 물 저장고에서는 작품이 물 위로 반사되면서 작품의 그림자가 신비로운 느낌을 한껏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스탄불 비엔날레는 여느 비엔날레에 비해 전시기간이 짧다. 11월에 들어서면 작품에 해로운 한기를 머금은 습기가 이 지역을 점령하기 때문이다. 유적지에서의 전시는 사실 이스탄불에 현대미술 인프라가 부족해 제공된 것이었다.

지난 가을 현대미술관이 개관함에 따라 앞으로 전시회 방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장소성을 보유하는 전시라는 점은 이스탄불 비엔날레에 고유한 특성이고, 또 유리한 지점이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비엔날레가 접근하지 못하는 장소성의 맥락을 떠올리게 된다. 지역적 특수성을 살리면서도 국제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바로 그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박신의 <경희대 교수.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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