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지식사회에 묻는다] 386급 지식인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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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세기의 우리 역사는 '식민지에서 자주국가로,냉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의 전환'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전세계적 차원의 패러다임 변화와 무관할 수 없는 이런 추이 속에서 지식인 상(像)도 바뀌지 않을 수 없다.

20세기 중반 프랑스의 철학자 사르트르가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시대적 총체성을 담지한 '보편적 지식인'을 주장한 반면, 1960년대 말 프랑스 학생운동의 철학적 반영이라 할 수 있는 미셸 푸코가 전문적 지식을 통한 현실개입을 주장한 '특수 지식인'을 제안한 것도 세계사적 변동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우리의 경우 식민지 시대에 민족적.지사적 지식인이 그 시대를 대변하는 지식인 모델이었다면, 냉전 권위주의 아래서는 근대화를 주도한 관료지식인과 근대화 과정에서 야기된 모순을 반영한 저항적 지식인이 우리 사회의 다른 두 측면을 대표하는 지식인 모델이었다.

역사적 전환과 지식인의 궤적을 살펴보면 이제 우리 사회에 새로운 제3의 지식인 모델 창출이 요청되는 시점이다. 지식인이 어떤 이념이나 당파성에 따라 결집되었던 동원(動員)지식인에서 시대적 변화에 걸맞은 새로운 창조적 지식인이 요구되고 있다.

우리 사회 어느 곳도 사회적 변화에 조응하는 전략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에 그런 기대를 포기한 지 오래다. 관료집단, 군부, 사회 이익집단에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도 시대착오다. 그렇다고 지식사회도 이런 변화에 조응하는 나름의 전략을 지니고 있는가. 바로 이같은 전망의 부재 시점에서 '새로운 지식인 모델은 있는가'를 묻고자 한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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