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정책세력을 키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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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금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격변의 시기에 살고 있다. 이러한 변화시기에 국가의 활로를 바로 찾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국가능력(state capacity)을 높여야 한다.

국가능력이란 국가목표를 바르게 세우고 국가전략을 치밀하게 짜고 국가정책을 효과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이다.즉 국가경영의 총체적 능력을 말한다.

***비관적인 국가경영 능력

그런데 문제는 수년간 우리나라의 국가능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격변의 시기일수록 보다 유능하고 유효한 국가능력이 요구되고 있는데 우리는 그 반대로 가고 있다. 국가능력의 약화가 의약분업.교육개혁.외교정책 부정비리 등 여러 분야에서 국정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오늘날 교육붕괴의 현실이나 부정부패의 만연을 보고 한없는 분노와 좌절감에 빠져 있다. 그런데 우리를 더욱 절망케 하는 것은 교육이나 부패문제의 심각성 그 자체가 아니라 이 문제를 과연 우리나라 국가능력이 풀 수 있겠는가 하는 근본적 회의다.아니 정권을 바꾼다 해도 과연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하는 비관론이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우리나라에 중요 국가과제에 대해 이상적이면서 현실적인 정책대안을 제시하고 동시에 추진능력까지 갖춘 '개혁적 정책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이율곡 선생의 표현을 빌리면 창업(創業)에 능한 정치세력은 있고 수성(守城)에 능한 관료세력은 있는데 소위 경장(更張)에 능한, 즉 개혁에 능한 정책세력이 없다.

그동안 우리 정치는 국가경영형(型)이 아니라 권력투쟁형이었기에 정치세력의 정책능력은 대단히 약하다. 관료는 현상유지에는 능하나 변화에 앞장 서 위험을 부담할 세력은 아니다.

학계는 상아탑에 안주해 비판이 주였지 현실적 정책대안을 제시할 능력도, 국정참여의 경험도 없다. 이러한 풍토 속에서 비록 시대는 변화와 개혁을 요구한다 해도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무에 능한 도덕성과 헌신성을 함께 갖춘 현실적 이상(理想)주의자, 개혁적 정책세력은 나올 수가 없었다.

국가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책세력을 키워야 하고 이를 위해 시급히 두 가지를 해야 한다. 하나는 국가정책을 연구하는 정치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민간 싱크탱크(두뇌집단)를 여럿 만드는 일이다.

특정 이념이나 정파로부터 독립되어 오직 국익과 공익우선의 입장에서 국가전략과 국가정책에 대해 연구.비판.토론하고 새로운 정책 청사진들을 제시하는 싱크탱크가 있어야 한다.미국의 브루킹스 연구소와 같은 권위있는 민간 두뇌집단이 있어야 한다.

미국에서는 이 민간 싱크탱크들을 입법.행정.사법.언론에 이어 제5부(the fifth estate)라고 부를 정도로 그 중요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정책세력을 키우기 위한 둘째 과제는 '국가정책대학원'을 여럿 만드는 일이다. 우리나라에는 기업경영을 가르치는 경영대학은 많으나 국가경영과 국가정책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은 없다.이론적.실무적 전문성과 도덕성을 겸한 정책가형(型) 국가경영인재를 교육하고 개혁능력을 가진 정책세력을 키우는 교육기관이 없다.

***민간 싱크탱크 등 활용을

국가정책을 올바로 교육하기 위해서는 정치학.경제학.법학.행정학.사회학.경영학 등의 학제적 연구가 필수적이고 반드시 이론가(교수.학자 등)와 현장 전문가(전직 고급공무원, 대기업의 CEO 등)가 함께 가르쳐야 한다. 예컨대 미 하버드 대학의 케네디 스쿨이나 프린스턴 대학의 윌슨 스쿨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국가경영은 아무나 주먹구구식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한 나라의 국가정책이란 정권이 바뀌었다고, 장관이 바뀐다고 그렇게 쉽게 마음대로 바꿔도 되는 것은 아니다.국가정책의 중심을 정치적 인기주의로부터,관료적 보신주의로부터, 무책임한 여론의 변덕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 더 이상 아마추어들에게 개혁을 맡겨 두어서는 안된다. 반드시 도덕적.개혁적 정책세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시간이 걸려도 콩을 심어야 콩이 나지 않겠는가?

朴世逸(서울대 교수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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