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국 환율 더 유동적이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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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달러화 약세 현상이 더욱 가파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이 약달러 현상을 저지해 줄 것이라는 일부 기대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G20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들은 21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에서 "환율의 급격한 변화를 원치 않는다"고 밝혔을 뿐 달러 급락에 대해 논의하지 않고 연례회의를 마쳤다. 오히려 G20은 회의 뒤 아시아를 직접 거명하며 "환율이 더욱 유동적이어야 한다"는 입장이 담긴 성명서를 발표했다. 지난 2월 선진 7개국(G7) 회담에서 아시아를 지적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훨씬 강한 표현이다. 전문가들은 G20이 중국 위안화에 대해 절상 압력을 가한 것으로 분석한다. 이에 따라 중국 위안화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 통화에 대한 절상 압력이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이 대세로 받아들여지면서 한국.일본.싱가포르 등 아시아 각국의 통화가치가 연쇄 절상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은 아시아 통화가치가 높아질 경우 유가 부담이 줄어 인플레이션 압력이 진정될 수 있고, 아시아 국가의 대미 무역흑자를 이대로 두면 심각한 무역분쟁 소지가 있다며 아시아 통화 강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프랭크 바고 전미제조업협회(NAM) 국제담당 부회장은 "(아시아 통화 절상의) 화산에서 연기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고 표현했다. 급격한 절상을 눈앞에 두고 있다는 얘기다. 짐 매코믹 리먼브러더스 통화전략가는 "위안화 가치가 내년 말까지 5%가량 오를 것"이라며 "아시아 다른 주요국의 통화가치는 최대 15%까지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중국 위안화에 대한 절상 압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 크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칠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담에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주석에게 "미국은 중국과 공정하고 정당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밝힌 것도 사실상 '환율제도 변경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각국은 미국의 통화 절상 압력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면서도 달러 약세를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후 주석은 "점진적인 환율제도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 총재는 "중국 정부의 기본 외환정책은 환율제도 개혁"이라면서도 "아직 기술적 조정에 관해 언급할 단계가 아니다"고 밝혔다.

와타나베 히로시(渡邊博史) 일본 재무성 재무관도 G20 회담이 끝난 뒤 "지금이 (일본 정부가) 외환시장 개입을 고려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WSJ은 아시아 국가 통화가치가 오를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아시아 주식과 채권에도 돈이 몰려들고 있다고 전했다. 역내 통화가치가 상승하면 그만큼 자산가치가 뛸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한편 아시아 증시는 자국 통화 강세로 기업 채산성이 나빠질 것이라는 우려에 따라 동반 하락했다. 한국 증시(종합주가지수)가 1.97% 떨어진 것을 비롯해 일본(2.11%), 대만(3.12%) 등이 모두 약세였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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