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판에 서서 마을을 보네] 1. 샛강<3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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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큰삼촌은 오십년대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허물어졌다. 의사 면허증 때문에 그를 고용했던 돌팔이 의사의 모함 투서 때문에 고보 동창생들과 술자리에서 말 몇 마디 한 것으로 그야말로 막걸리 반공법에 걸려서 호된 고문을 당했다. 그러고는 다른 죄목으로 기소되었다가 살고 나온 뒤 세상살이에 뜻을 잃고 술에 절어서 살았다. 그이도 두 번인가 재혼을 하더니 말년에 딸 하나 보고 외롭게 살았다. 그들은 요즈음 말로 이산가족 1세대인 셈인데 팔십년대를 고비로 진작에 모두 세상을 떠났다.

전쟁 시기 자유당 치하의 남한 사회를 비꼬던 몇 가지 말이 생각난다. '모리배'와 '국물'이란 말이 유행했는데 전쟁 경기를 이용하여 자기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던 기업가와 장사꾼들, 또는 그들의 이익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빽'이라는 말이 오랫동안 떠돌았는데 이는 '배경'이라는 말로 바뀌어 최근까지도 떠돌았던 생명력이 질긴 말이다. 전선의 군인들이 총에 맞고는 '빽'하면서 죽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을 정도였다. 즉 병역비리로 뒤를 보아주는 이가 없어서 군대에 나가서는 후방으로 빠지지도 못하고 죽는다는 소리였다. '시까요'라는 언뜻 들으면 일본어 같은 말도 있었는데, 거의 오십만이 넘는 미군 병력이 주둔했던 탓에 곳곳마다 댄스홀이 생겼고 이를 본받은 후방의 한국 민간인들도 춤바람이 불어 '추시까요'가 입에 붙었다고 하여 나온 말이었다. '바가지를 쓴다'는 것은, 헌병이 쓰는 헬멧의 속어가 바가지였지만, 양키 물건을 팔다가 군수물자의 암거래 단속을 나온 미군 헌병들에게 물건을 빼앗겨 손해의 덤터기를 쓴다는 말이었다. 거지나 부랑아들을 이르는 말로 '양아치'라는 말이 생겨났는데 이는 예전에 각설이를 다른 말로 '동냥아치'라고 부르던 데서 - 아마도 옛날 거지가 요령이나 쇠를 두드리며 구걸했던 것으로 보아 이는 동령아치가 맞겠지만 -'동'자가 떨어져 나간 말이다. 즉 미국인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양놈'들이 들어온 뒤에 생겨난 거지라는 뜻과 혼합되었을 것이다. 양아치와 비슷한 시기에 서로 따라붙은 말이 있으니 '꿀꿀이죽'이라는 허드레 시장 음식이다. 이는 전쟁 시기에 미군 부대에서 음식 쓰레기를 불하받아 제법 먹을 만한 것들은 상품으로 팔고 나머지는 혼합하여 끓여서 국이나 죽처럼 시장 모퉁이에서 팔던 음식이었다. 운 나쁘면 휴지나 담배꽁초가 죽 속에서 나올 적도 있지만 운이 좋으면 제법 큰 건더기로 고깃덩이나 소시지들이 줄줄이 나오기 마련이다. '꿀꿀이죽'의 발전적인 퓨전 음식으로 베트남 전쟁 경기 시절에 나온 '부대찌개'는 지금도 엄연히 독특한 먹거리가 되어 전국 식당의 차림표에 올라가 있다.

나에게 누군가 유년기의 정서가 없다고 한다면? 사람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기억들이 있기 마련이라고 말해 주겠다. 지옥의 한가운데서도 포화가 멎는 새벽이 다가오면 아침노을 속으로 새가 날아가기 시작하고, 저 멀리 사람이 사는 마을의 지붕들 위로 연기가 오른다. 내가 살았던 시대가 하루도 마음 편하게 잠들 날이 없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하여 우리 동포들이 사람답게 살아보려는 꿈을 아예 접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닌가.

그림=민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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