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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59)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실제로 오늘날에도 흥덕대왕의 불교에 관한 독실한 신심을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남아 전하고 있다.

최치원(崔致遠)이 찬(撰)한 진감선사비문(眞鑑禪師碑文)에 의하면 진감선사 즉 혜조(慧照)가 830년 당나라에서 귀국하자 흥덕대왕은 그를 맞아들여 '과인은 점차 동쪽 계림지경(鷄林之境)을 묘길상(妙吉祥)의 집으로 만들겠다'고 말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계림지경은 곧 신라를 가리키는 대명사로 신라를 묘길상, 즉 불국토로 만들겠다는 흥덕대왕의 강력한 의지를 알아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인 것이다.

이런 흥덕대왕에게 장보고가 바쳐 올린 주방의 수월관음상이야말로 '묘길상'의 선물이었던 것이다.

"경이야말로 천개의 손을 갖고 있음이로다."

흥덕대왕이 감탄하여 말하자 장보고가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리며 대답하였다.

"대왕마마, 마마께오서 신을 과찬하여 천개의 손을 갖고 있다 말씀하셨사오나 실제로 천개의 손을 갖고 있는 것은 신이 아니나이다."

장보고가 아뢰자 이를 지켜보고 있던 신하들이 일제히 술렁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하면."

웃으며 흥덕대왕이 말하였다.

"경 말고도 하늘 아래 천개의 손을 가진 보살이 또 있다는 말이냐."

"대왕마마, 신이 열개의 손을 가졌다면 백개의 손을 가진 자가 따로 있사오며,신이 천개의 손을 가졌다면 만개의 손을 가진 자가 또 따로 있사옵니다."

"그가 누구냐."

흥덕대왕이 물어 말하였다.대왕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지고 없었다.

"만개의 손을 가진 그것은 사람이 아니나이다."

장보고가 대답하였다.

"사람이 아니라면 신불(神佛)이란 말이냐."

"그렇사옵나이다,대왕마마."

"천개의 손을 가진 신불이라면 천수관음(千手觀音)이란 말이냐."

"천수관음이 스물일곱개의 얼굴을 갖고, 천개의 눈과 천개의 손을 갖고 있다면, 이는 백개가 넘는 얼굴을 갖고, 만개의 눈과 만개 이상의 손을 갖고 있는 신불이나이다."

"그러한 신불이 도대체 어디 있다는 말이냐."

정색을 한 얼굴로 흥덕대왕이 물어 말하였다. 그러자 장보고가 입을 열어 말하였다.

"그것은 바다(海)이나이다."

대왕마마 앞에서 정론을 펼치는 장보고의 당돌함에 모든 중신들은 몸둘바를 몰라하였다.

"바다라니."

다소 의외의 대답이라는 듯 대왕이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으로 다시 물어 말하였다.

"바다가 어째서 만개 이상의 손을 갖고 있는 신불이란 말이냐."

그러자 장보고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감히 신 장보고 대왕마마께 말씀드리겠사옵나이다. 옛날 부처님께서 녹야원(鹿野苑)에서 오백명의 비구들과 함께 계셨을 때였습니다. 그때 부처님은 바다를 좋아한다는 젊은이를 만나자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바다 속에 무슨 신기한 것이 있기에 너는 그렇게 바다를 좋아하는가.'

이에 젊은이는 대답하였습니다.

'바다 속에는 여덟가지 처음 보는 법이 있으므로 저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첫째로 큰 바다는 매우 깊고 넓습니다. 둘째, 바다에는 신비로운 덕이 있는데 네개의 큰 강이 각각 오백의 작은 강을 합쳐서 바다로 들어가면 그것들은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립니다. 셋째, 바다는 모두 똑같은 한맛의 일미(一味)입니다. 넷째, 바다는 드나드는 조수가 그 때를 어기지 않습니다. 다섯째,바다 속에서는 여러 중생들이 살고 있습니다. 여섯째, 바다는 그 어떤 것을 받아들일지라도 비좁아지지 않습니다. 일곱째, 바다에는 진주와 같은 여러가지 보석들이 있습니다. 여덟째, 바다에는 금모래가 있고 네가지 보배로 된 수미산이 있습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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