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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교육감’ 더 이상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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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특히 두 가지를 말하고 싶다. ‘로또 교육감’과 ‘돈(錢)육감’이다. 전국의 교육감 선거 출마 대기자들은 후보 등록이 끝나는 오는 14일 오후 5시에 목을 매고 있다. 등록이 마감되면 관할 선거구위원회별로 후보 이름을 투표용지에 게재하는 순서를 추첨으로 결정한다. 이름이 투표용지 맨 앞에 적히느냐 두 번째에 나오느냐, 아니면 더 뒤로 가느냐에 따라 적게는 5%에서 많게는 20%까지 표가 왔다갔다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로또’ 선거다. 2007년 대통령 선거와 함께 치른 경남·울산·충북·제주 교육감 선거에서는 한나라당 후보와 같은 ‘기호 2번’이 전원 당선됐다. 우연으로 볼 수 없다. 당시 기호는 이름의 가나다 순서에 따라 배정됐다.

그래서 국회가 나서서 지방교육자치법을 고쳤다. 번호를 아예 부여하지 않고, 가나다 순이 아닌 추첨으로 게재 순서를 정하기로 했다. 투표지에 ‘교육감·교육의원 선거는 정당과 무관합니다’라는 문구도 넣기로 했다. 차라리 투표용지를 사각형 아닌 방사형(放射型)으로 만들어 순서 시비를 없애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일일이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하는 등 실무적인 난관 때문에 채택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로또는 살아남았다. 이번에 교육감이 되려는 영남·보수성향의 후보는 투표용지 맨 앞자리(한나라당 후보 자리)를, 호남·진보성향 후보는 두 번째 자리(민주당 후보 자리)를 추첨으로 배정받길 바라며 용꿈들을 꾸고 있다. 부산에서는 지난 1일 열린 한나라당 ‘지방선거 필승 결의대회’에 교육감 지망생 8명이 떼로 몰려가 명함을 돌리고 일부 선거운동원은 “한나라당 당원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고 소리치는 진풍경이 빚어졌다. 이게 과연 ‘교육적’인가. 다른 자리도 아닌 교육감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할 일인가.

엄청난 돈을 들여야 하는 ‘돈육감’ 문제는 더 심각하다. 우리는 공정택 전 교육감의 사례에서 빚을 내 선거를 치른 이의 행태가 어떤지 똑똑히 목격했다. 이번 선거도 크게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모든 선거는 ‘조직’과 ‘돈’이 말을 한다. 6·2 교육감 선거 출마 희망자들은 거의가 평생을 교육·교육행정에 몸바친 분들이다. 교직 처우가 ‘선생 X은 개도 안 먹는다’던 시절보다 얼마나 나아졌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40억7300만원(경기도 교육감 후보 법정 선거비용 한도액), 38억5700만원(서울 한도액) 같은 거액을 캐비닛에 넣어두었다가 선거판에 툭 털어 넣을 재력가는 드물 것이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모르되 교육계 봉급만으로는 어림도 없는 돈이다.

몇몇 보수성향 후보들은 그래서 “차라리 전교조 조직을 업은 후보가 부러울 때가 있다”고 실토한다. 지자체 단체장·의원 등 다른 후보와 달리 정당의 지원이 금지돼 있으니 조직 등 모든 것을 ‘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 틈을 선거기획사들이 파고들어 “외상으로 선거 치러주겠다”고 유혹한다. 15% 이상만 득표하면 선거비용 전액, 10~15% 득표면 절반을 돌려받으니 “일단 뛰어들라”고 꾀는 것이다. 수도권의 한 예비후보는 “다들 돈이 없어 보이는데도 기획사들과 얽혀서 운명에 맡기는 심정으로 끝까지 뛰고 보자는 것 같다”고 말했다. 후원회를 통해 선거비용 절반까지 모금할 수 있지만, 그것도 다 빚이다. 당선 후에 빚진 이들에게 교원 인사든, 학교 급식 납품이든, 학교 공사든 ‘은혜’를 갚지 않을 도리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교육감 직선제는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한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