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구속영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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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논어』 '위정편'에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라는 말이 있다.

법제와 금령(禁令)으로 백성을 이끌고 형벌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백성들은 형벌만 면하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모르게 된다는 소리다.

요리조리 법망을 피해 법에 저촉되지만 않으면 그것으로 다행이라고 여기는 세태는 2천5백년 전 공자(孔子)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뒤집어 보면 정치가 지나치게 공권력에 의존하면 민풍(民風)이 피폐(疲弊)해진다는 경고니 요즘 세태에도 딱 들어맞는 말이다.

국가공권력의 핵심은 경찰과 검찰이고,사법경찰이나 검사가 청구하는 영장(令狀)은 그 공권력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영장에는 군복무 의무를 이행해야 할 장정들에게 나가는 소집영장도 있고, 가택수색을 위해 발부되는 압수.수색영장도 있지만 사람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구속영장이다.

영어로 영장을 뜻하는 워런트(warrant)는 14세기 독일에서 유래한 말로 알려져 있다.

고대 독일어 베르엔토(werento)가 어원으로 원래는 보호자란 의미였다. 국가가 개인의 신체나 재산에 대한 체포.구금.압수.수색을 하려면 반드시 법관이 발부한 영장에 따르도록 헌법은 규정하고 있다.

그만큼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할 가능성이 큰 것이 영장이고, 따라서 남발해서는 안되는 것이 영장이다.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판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할 때는 피의자가 죄를 범했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일정한 주거가 없거나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고, 도주 염려가 있어야 한다고 형사소송법에는 돼 있다.

하지만 30%를 오르내리는 높은 영장기각률은 규정과 현실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한나라당 제주도지부에 대통령 아들 관련 정보를 제공한 혐의로 당직자와 해당 경찰관에게 청구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이다. 무리한 공권력 행사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해야 할까.

공자는 법제와 형벌 대신 덕과 예로써 나라를 다스리라고 충고한다.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차격(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이라는 것이다.

즉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다스린다면 백성들이 부끄러움을 알고 나라가 격조를 갖게 된다는 소리다.바른 정치는 법제와 형벌로써 강제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덕과 예로써 솔선수범하고 교화할 때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이 말이 지금이라고 다르겠는가.

배명복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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