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비 수천억 쓰는 정부 ‘北 휴대전화 핫라인’에 구멍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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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2면

북한 내부 이야기가 일상처럼 들려온다. 화폐개혁 소식은 당일로, 화폐개혁 실패 책임을 뒤집어쓴 박남기 국가계획위원장의 사형 소식은 다음 날로 남한에 전해진다. 탈북자 한 명에게 귀를 쫑긋 세우던 시절은 갔고 이젠 휴대전화로 북한 내부 사정을 매일 민감하게 잡아채는 사람과 집단이 있다. 자유북한방송·열린북한방송·열린북한통신·DailyNk·좋은벗들 같은 기관과 자유북한연합의 박상학 대표, 납북자가족모임의 최성용 대표 같은 개인들이다. 이들이 심어 둔 통신원의 휴대전화를 타고 오는 정보들은 북의 장막에 구멍을 내고, 북한 권력에 상처를 낸다. 그렇게 고인 변화의 동력은 민들레 홀씨처럼 북한 전역으로 전파된다.

중앙SUNDAY 4월 25일자 ‘서울-북한 휴대전화 11번 통화로 추적한 북한 내 천안함 공격 소문’ 기사는 이런 과정의 산물이다. 이 기사는 joins.com에서 당일 30만 가까운 클릭을 기록했다. 취재원 중 한 명은 “이명박 대통령이 중앙SUNDAY의 이 기사를 봤다”는 얘기를 정보 관계자로부터 들었다고 말했다. 아사히 신문과 LA타임스도 뒤따라 기사 소스들을 취재했다. 이런 현상은 천안함 사건 뒤에 웅크린 북한에 대한 우려와 분노를 반영한다. 그런데 국내 일각의 반응, 당국의 태도엔 이런 관심에 역행하거나 무심한 듯한 단면이 드러나 안타깝다.

본지 보도 뒤 최성용 대표는 100여 통에 가까운 협박 전화를 국내·일본·중국 등지로부터 받았다. 최 대표는 “싸돌아다니지 말라”, “간첩질 하는 너를 처단하러 사람을 보내겠다”, “포를 뜨겠다”는 말을 적대 세력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다. 최씨는 전과 다르게 한숨이 나온다고 했다. 협박을 감당해 내기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북한이 ‘처단’을 별러 경호가 붙은 인사가 국내에 9명, 그 가운데 유일한 남한 출신이 최씨라고 한다. 최씨에겐 고 노무현 정부 때 2명의 경찰이 붙었다. 이 경호는 지난해 11월 25일 돌연 끊겼다. 경찰은 “유명해졌으니 북한이 안 건드릴 것”이란 비아냥만 남겼다. 유명해지긴 황장엽씨나 ‘삐라의 대부’ 박상학씨도 마찬가지인데 그들에겐 여전히 24시간 밀착형 ‘가’급 경호가 붙어 있다. 황씨는 또 여전히 암살 대상이란 게 증명됐다. 그러니 같은 ‘가’급에서 느닷없이 탈락된 최씨가 “협박에 가족들이 겁먹는다. 경호받을 때와 다르다”고 힘겨워하는 게 이해된다. 당국은 최씨에게 ‘북한에 독하게 굴지 말라’고 압박하는 것일까.

국내 반대파 일각의 태도도 좀스럽다. ‘최씨·박씨처럼 북한과 통화하는 사람을 국가보안법·남북교류협력법 위반으로 구속하라’는 항의와 신고가 경찰로 밀려든단다. 경찰은 고소가 접수되면 절차상 검토해야 할 것이다. 북한 정보를 못 얻게 틀어막으라는 주장의 노림수는 뭘까.

당국 얘기로 또 돌아가 보자. 이런 활동의 의미로 미뤄 당국은 진작 휴대전화 네트워크의 진화 전략을 마련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래 보이지 않는다. 박상학씨의 북한 통화 내용 일부가 공개된 뒤 군 관계자는 “왜 중요한 정보를 미리 안 알려 줬느냐”고 따졌단다. 땡전 한 푼 지원 없다 얻어 가는 처지에 큰소리니 싸움이 벌어졌다. 최씨를 찾은 정보관계자는 점잖았지만 역시 ‘녹취록’에 손을 벌렸다.

하다 못해 전화 요금도 안 대주면서 결과만 빼가는 꼴이다. 정보 당국들이 수천억씩을 쓴다면서 정작 중요한 네트워크를 갖춘 이들은 왜 제쳐져 있었는지 의아하다. 뭔가 한다지만 적어도 구멍이 뚫려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시키지 않았는데도 국가를 대신해 북한을 파고드는 이들을 어렵게 하지 말고 도와줘야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 대통령이 이 기사에 보인 관심’은 중요한 모멘텀이다. 현재의 ‘탈북자 네트워크 관리’에 아쉬움을 표시한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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