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Sports Pub]반지의 제왕, 안정환의 마지막 도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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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호 16면

안정환은 재능을 타고난 선수다. 박지성처럼 성실함을 앞세워 뚜벅뚜벅 전진하는 타입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가 불성실하다는 건 아니다. 그는 빠르면서도 유연하다. 강하면서도 부드럽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히딩크는 안정환을 ‘변속 기어’라고 표현했다. 경기의 흐름을 완전히 바꾸는 선수란 뜻이다. 그가 지금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아니라 중국에서 뛰는 건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안정환은 정서적으로도 매우 예민한 선수다. 수원 삼성 소속이던 2008년엔 FC 서울과 2군 경기를 하다가 상대팀 서포터가 가족을 들먹이며 야유하자 관중석까지 쫓아가 언쟁을 벌였다. 지난해 중국에 진출한 뒤에도 두 차례나 상대편 선수와 거친 몸싸움을 벌였다. 욱하는 성질은 승부 근성으로 승화되기도 한다. 하지만 아주 가끔 그럴 뿐 부작용이 더 많다.

안정환은 한 팀에서 우직하게 버티지도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이탈리아와 16강에서 연장 골든골을 터트린 후 이탈리아 클럽 페루자에서 쫓겨난 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2002 월드컵 후 지금까지 8년 동안 안정환은 시미즈·요코하마(이상 일본), 메츠(프랑스), 뒤스부르크(독일), 수원 삼성·부산 아이파크(이상 한국), 다롄 스더(중국)를 전전했다. 이런 점도 박지성과 비교된다. 박지성은 이력이 간단하다. 일본에서 네덜란드로,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로.

박지성은 고교 시절 이후 맨유에 갈 때까지 한 명의 에이전트와 계약했다. 안정환은 수많은 에이전트에게 위임장을 써줬다. 그리고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팀을 찾았다.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는 대학 시절 훈련이 없을 땐 공사장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할 정도로 고생을 했다. 성공에 목이 말랐을 것이다. 기자가 보기에 안정환에게 결여된 것은 길을 제시해줄 멘토, 또는 나침반과 같은 존재였다. 그가 작은 성공을 거뒀을 때부터 그의 곁에는 그를 지켜주는 사람보다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았던 것 같다.

안정환에 대해 사람들을 곧잘 오해를 한다. 얼굴만 보고 나약한 귀공자를 떠올린다. 그러나 안정환은 잡초의 생명력을 지닌 ‘투사’다. 그가 2009년 중국 리그로 갔을 때 많은 사람은 ‘이제 안정환의 시대는 끝났다’고 했다. 하지만 안정환은 끈질겼다. 축구대표팀의 허정무 감독은 지난달 30일 월드컵 엔트리를 발표했다. 거기 안정환의 이름도 있었다.

한때 기자는 안정환이 축구선수이면서도 헤딩을 즐겨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안정환은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두 골을 넣었고 모두 헤딩골이었다. 그는 언제 혼신의 힘을 쏟아부어야 하는가를 알고 있다. 안정환이 남아공행 티켓을 손에 넣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기회는 온다. 안정환은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마지막 월드컵을 위해 거침없이 다이빙 헤딩슛을 날릴 것이다.

독자들이 눈치를 챘겠지만 기자는 안정환의 팬이 아니다. 하지만 기자가 어떻게 생각하든 사람들은 그를 ‘판타지 스타’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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