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워치] 미국을 괴롭히는 것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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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2일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전쟁준비 완료를 선언했다. 이르면 이번 주 안에 공격이 개시될지 모른다. 이번 전쟁은 미국이 걸프전 이후 10년 만에 치르는 대외전쟁이라는 점에서 서로 비교된다. 그러나 미국 자신이 직접 공격을 받았다는 점 말고도 이번 전쟁은 여러 면에서 걸프전과 다른 이질적인 전쟁이 될 전망이다.

1990년 8월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5개월 동안 미국은 군사력을 집결하는 한편 다각적 외교를 전개, 이라크 포위망을 구축했다. 정작 전쟁은 초단기전이었다. '1백시간 전투' 로 다국적군은 일방적 승리를 거뒀다.

이번 전쟁은 세계 55개 국가.지역에 테러 네트워크를 형성한 '보이지 않는 적' 과의 싸움이다. 미국의 한 군사전문가는 "베트남전과도 걸프전과도 다른 미지(未知)의 전쟁, 언제 끝날지 모를 시간의 소모전이 될 것" 이라고 예상했다.

미국은 군사력 집결과 함께 오사마 빈 라덴에 대한 정보수집, 아프가니스탄 포위망 구축을 위한 외교에 주력하고 있다. 군사력은 이미 충분한 수준이지만 정보수집과 외교는 고전 중이다.

공격에는 영공 통과 허용, 기지제공 등 주변국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주변국들은 협조를 약속하면서도 까다로운 조건을 달거나 상당한 반대급부를 요구하고 있다.

탈레반 정권과 밀접한 관계에다 빈 라덴에 대한 정보를 가진 파키스탄을 어떻게 회유하느냐가 특히 중요하다.

파키스탄은 3백70억달러에 달하는 외채의 상환연기와 경제원조를 바란다. 미국은 98년 인도.파키스탄 핵실험 실시 이후 계속돼 온 경제제재를 해제하는 한편 긴급원조를 약속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을 전적으로 신뢰하진 못한다.

파키스탄도 미국을 적극 지지하다간 국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이 정권 타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또 미국이 지원하는 반(反)탈레반 북부동맹과는 앙숙이다. 이미 파키스탄에 들어와 있는 2백만명 외에 1백만명이 추가로 유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아프간 난민문제도 심각하다.

러시아와 중국도 지원을 약속하면서 조건을 달았다. 러시아는 미국이 체첸반군 소탕작전을 반테러작전으로 '인정' 하고 더 이상 인권문제를 거론하지 말라고 요구한다. 중국도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티베트 독립운동 탄압을 미국이 눈감아주기를 바란다.

미군 특수부대의 기지로 사용될 중앙아시아 5개국은 대규모 경제원조를 요구하는 한편 자국내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 소탕작전에 대한 지원, 독재정권을 비판하는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인권탄압을 묵인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비(戰費)조달도 쉽지 않다. 걸프전은 다국적군 참가.지원국들로부터 5백35억달러를 거둬 그중 5백10억달러만 사용한 '흑자 전쟁' 이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미국의 방위전쟁' 이기 때문에 전비도 대부분 미국이 부담해야 할 것 같다. 이와 함께 전쟁이 시작되면 필연적으로 따라올 민간인 피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도 부담스럽다.

험준한 산악지형, 살인적인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 이번 전쟁은 이래저래 미국에 복잡하고 어려운 전쟁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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