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종환 “정지용은 지적인 서정시 처음 보여준 시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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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도종환 시인(왼쪽)이 지용문학상 수상자 시비를 이인석 옥천군 발전협의회 의장과 함께 둘러보고 있다. [사진작가 김영래 제공]

100만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 시집 『접시꽃 당신』의 도종환(56) 시인에게 충북 옥천군은 각별하다. 중학교 교사 시절 사회비판적 시를 쓴다며 청주에서 옥천으로 ‘좌천’된 그는 그곳에서 아내를 잃었고, 아내를 떠나 보낸 슬픔을 토해놓은 시집 『접시꽃 당신』을 얻었다. 개인적 불행과 문학적 성공이 겹친 곳이다. 아내를 잃은 1985년 도씨에게는 네 살 난 아들과 태어난 지 4개월 밖에 안 된 딸이 있었다.

도씨는 아내를 직장이 있는 옥천과 집이 있는 청주 모두에서 가까운 충북 청원군 가덕면 공원묘지에 묻고 주말마다 찾으며 한스러움을 달랬다. 시인은 지금도 당시를 눈물 없이는 회고하지 못한다. 지금 눈으로 바라보면 세상과 인생에 대해 아는 게 없이 한없이 위태롭기만 하던 30대 초반. 도씨가 할 줄 아는 거라곤, 또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밖에 없던 시절이다.

도씨에게 ‘옥천의 시인’ 정지용을 기리는 정지용문학상이 주어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해 연애 욕망을 특유의 감성적 언어로 표현한 ‘바이올린 켜는 여자’로 21회 정지용문학상을 받았다.

도씨와 함께 27일 옥천을 찾았다. 정지용의 음력 생일인 5월 15일에 맞춰 다음달 14∼16일 옥천 일대에서 열리는 23회 지용제를 앞두고서다. 도씨는 15일 오전 서울역에서 출발해 당일로 옥천을 다녀오는 문학테마열차를 진행한다. 시를 낭송하고 일반인 참가자들과 문학 얘기를 나눈다. 가요 ‘너를 사랑해’로 유명한 가수 한동준씨가 옥천으로 내려가는 동안 노래도 들려주는 문화열차다.

옥천은 지역 문화행사의 모범사례 같은 곳이다. 곳곳에서 정지용의 고향임을 일깨우는 상징물을 만날 수 있다. 생가와 문학관이 있는 옥천 구읍에서 ‘멋진 신세계’로 이름 붙인 장계관광지에 이르는 구 37번 국도변이 대표적이다. 버스정류장 하나 허투루 두지 않았다. 30리(12㎞) 거리라 해서 ‘향수 30리’라 이름 붙인 국도 중간쯤의 소정 버스정류장. 지붕 위에 거대한 잉크병·펜·스탠드 조형물을 설치해 정류장 건물 자체가 하나의 큼지막한 책상 모양이다. 물론 정지용의 책상을 형상화한 것이다. 정지용의 시 구절을 간판에 써 붙인 음식점도 여럿이다. 영국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이름을 딴 장계관광지는 이상(李箱)보다 한 발 앞섰던 최초의 모더니스트, 정지용의 모던한 측면을 부각했다. 주민들은 물론 방문객도 이용할 수 있는 창작 공방인 ‘모단 스쿨’, 정지용의 시 제목에서 딴 카페인 ‘카페 프란스’, 정지용의 시는 물론 역대 정지용문학상 수상자들의 당선작들을 새긴 시비 공원 등을 갖췄다.

도씨는 “지용은 일본 도시샤대 영문과에서 공부한 영·미 이미지즘 시학을 바탕으로 김소월 류의 감정적 서정시에서 탈피한 지적인 서정시를 처음 보여준 시인이었다”며 “그런 면에서 후배 시인들에게 끼친 영향이 심대하다”고 평가했다. 또 “지용은 그러면서도 모더니즘에만 갇히지 않고 ‘향수’로 대표되는 전통 정서, 후기 종교적인 시풍 등 다양한 면모를 보인 분”이라고 설명했다.

지용제는 옥천군·옥천문화원이 주최하고 문학사랑이 주관한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후원한다. 테마 열차 문의 쏙쏙체험(www.soksok.kr), 02-2633-7131∼3.

옥천=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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