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천상에서 지옥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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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준결승전 1국>
○·이창호 9단 ●·추쥔 8단

제 7 보

제7보(64~71)=어느 판이든 ‘빛나는 수’가 있다. 승패를 떠나 그 자체로 빛나는 수. 박영훈 9단에게 이 판에서 이창호 9단이 둔 수 중 가장 빛나는 수는 무엇이냐고 묻자 백△와 흑▲의 교환에 이은 64라고 대답한다. 그게 왜 좋은 수인가 물으니 박영훈은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우변 흑진과 좌변 두 점 등 어떻게 둘지 매우 어려운 장면인데요. 여운을 남긴 채 평범히 한 칸 뛴 이 수법을 보고 아! 하고 깨닫게 됐습니다. 가만 살피면 이것으로 형세는 백이 우세합니다.”

추상적이다. 중앙이 본래 추상적인데 수법도 추상적이고 설명도 추상적이다. 고수들의 영역은 피카소 그림과 같다. 이런 추상에 동물적 본능을 접목시킨 것이 ‘감각’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천상에서 지옥으로의 추락인가. 추쥔 8단이 69로 응수를 물어왔을 때 70으로 씌운 수, 이 수는 이창호 9단이 이 판에서 ‘가장 못 둔 수’였다. ‘참고도’처럼 백1로 받는 것이 상식이고 이렇게 받아 아무 일 없는 곳인데 이 9단이 왜 70처럼 엉성한 수를 두었는지 이해하기 힘들다. 답은 간단하다. 이창호는 71의 맥점을 못 봤다. 71은 70의 허점을 제대로 찌른 수였다. 응수가 두절된 이 9단은 긴 고통에 빠져든다.

참고도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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