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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 폐막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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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지난달 31일부터 남아프리카 더반에서 열렸던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가 8일(현지시간) 막판 대타협에 성공, 최종 선언문과 행동계획을 채택하고 폐막됐다.

각국 대표단은 이날 핵심 쟁점인 노예제도의 불법성과 팔레스타인의 자결권 및 독립국 건설권리를 인정하는 내용을 격론 끝에 표결을 거쳐 선언문에 포함시켰다.

이번 회의는 미국.이스라엘 등 일부 국가의 중도 철수로 우여곡절을 겪었으나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는 인종차별과 이에 따른 폭력사태에 대한 세부 실천사항을 사상 처음으로 명문화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일로 평가되고 있다.

◇ 무엇에 합의했나=각국 대표단은 노예제도와 관련, 과거 노예거래에 따른 배상 및 사과요구를 철회하는 대신 노예제도 및 노예거래가 반인도 범죄라고 규정하는 선에서 막판 대타협을 이뤄냈다.

또 노예제 피해 당사국들에 대해 유감을 표시하는 한편 모든 당사국이 노예거래 철폐 등을 위해 적절하고도 효과적인 조치를 취할 도덕적 의무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이와 관련, 각국은 국제사회가 제3세계의 사회.경제발전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 노예제로 피해를 본 일부 후진국에 대한 지원근거를 명문화했다.

중동문제는 주최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제안한 타협안을 기초로 팔레스타인인들의 자결권과 독립국 건설권한을 인정하는 선에서 타협이 이뤄졌다. 한편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명시적인 비난을 자제, 논란을 최소화했다.

각국은 이들 현안 외에 ▶외국인 차별▶식민주의▶세계화▶여성 및 어린이문제▶이민▶소수민족 단체▶에이즈 등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기로 했다.

◇ 회담의 의의=서방 강대국들이 과거 거리낌없이 자행했던 노예거래가 중대범죄였음을 명문화했으며 나아가 피해자에 대한 국제사회의 도덕적 책무를 확인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또 참가국 대표들이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평가와 존중이 이뤄져야 한다는 대원칙을 재확인했으며 나아가 국제사회가 각각의 사법체계 안에서 인종차별주의에 대응할 것을 촉구한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이 외에도 국제사회의 해묵은 쟁점인 이민문제와 망명자 처리문제에 대해서도 인종을 이유로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원칙을 재확인해 선언문에 포함시킨 점도 주요한 성과다.

◇ 각국 반응=미국.이스라엘.프랑스.영국 등 각국은 이번 회의성과에 대해 대체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의 수전 피트먼 국무부 대변인은 "이번 회의가 정치적 색채를 띠게 된 데 대해 실망했다" 면서도 "살펴볼 가치는 있다" 고 평가했다.

미국과 동반 철수한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 외무장관은 인종차별회의에서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여론이 막판에 약화된 데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연합(EU)대표들이 시오니즘을 인종차별과 동등시하려는 아랍권 등의 시도를 봉쇄한 데 대해 크게 평가했다.

영국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노예제도를 '반인도 범죄' 로 공식 규정한 최종 선언문에 대해 합의가 이뤄져 기쁘다" 고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메리 로빈슨 유엔 인종차별철폐회의 사무총장은 그러나 "더반 회의의 진정한 성과는 앞으로 각국 정부가 인종차별과 맞서 싸우기로 한 공약을 어떻게 실천에 옮기느냐에 따라 확인할 수 있을 것" 이라며 신중한 반응을 나타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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