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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추락하는 하토야마 정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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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그러나 TV로 이날 국회중계를 지켜본 일본 시민 중 그가 정말 우직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별로 없는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은 “だらしない(근성도 없고 우유부단하다 뜻)”다. 더군다나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외교적 위상을 바닥에 떨어뜨린 총리. 그의 거취 문제에 비교적 담담했던 일본 언론들도 대놓고 ‘총리 교체론’을 보도하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하토야마 내각 지지율은 25%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정권 출범 직후 역대 두 번째 높은 지지율인 71%를 기록했는데 7개월 만에 20%대로 추락한 것이다. 지금 상황에서 10%대로 떨어지는 것도 시간 문제다.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문제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하토야마 총리가 미군기지 문제 대처 과정에서 보인 우유부단한 태도다. 지난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게 “나를 믿어 달라”고 했다가 이튿날 일본 언론의 추궁을 당하자 “(오키나와 내 슈와브 기지로 이전하는) 미국과의 합의 원안을 지키자는 뜻은 아니었다”며 말을 바꿨다. 누가 강요한 사람도 없다. “오키나와가 아닌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는 방안으로 늦어도 5월 말까지는 최종 결론을 내겠다”며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 모친에게서 받은 거액의 장치자금으로 자신의 정치자금 담당 비서가 유죄선고를 받아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지난해 총선에서 내걸었던 수많은 매니페스토(정책공약)도 어느 것 하나 잡음 없이 처리된 것이 없다. 우정 개혁을 둘러싼 정권 내 불협화음이 어느 정도 진정됐나 싶더니, 이번엔 고속도로 요금 상한선제에 정권 실세인 오자와 이치로(小澤一<90CE>) 민주당 간사장이 반기를 들었다. 정확한 조사도 하지 않고 새해부터 급하게 어린이 수당을 도입하려다 보니 외국인 근로자의 해외 거주 자녀에게는 수당을 지급하고 해외 근무 중인 일본인의 국내 체류 자녀에게는 수당을 주지 않는 황당한 일도 벌어졌다.

‘양당 정치체제 구축’과 ‘관료사회 타파’라는 대명제를 내걸고 출발한 하토야마의 일본은 지금 어떤가. 민주·자민당의 저조한 지지율을 틈타 정당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일어서라 일본’ ‘일본창신당’ 등 이달 들어 결성된 신생 정당만 3개다. 관료 주도에서 정치 주도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정치인의 능력 부족이 노출되고 혼란이 이어졌다. 언제 내각이 해산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연일 속출하는 탈당자에 골머리를 앓는 야당 자민당이 하토야마 정권을 지탱하는 일등공신이라는 아이러니가 일본 정치의 현주소다.

박소영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