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만난 사람] 이동구 대구의료원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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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달 27일 감사원은 공무원 8명에게 표창장을 수여했다.

이동구(李東久·56)대구의료원장은 공기업 사장으로 유일하게 이 자리에 참석했다.

1998년 첫 공채로 대구의료원장에 취임한 李원장은 요즘 상복(賞福)이 터졌다.

99년에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돼 청와대 초청을 받았으며 올 들어서는 행자부장관 ·대통령 표창을 잇따라 받았다.

그는 본래 대구에서 잘 나가던 개업의였다.

공채 당시 한 면접관이 “연간 1억원의 소득세를 내는 병원장이 왜 연봉 6천만원짜리 의료원장직에 지원했느냐”고 물었다.

李원장은 경북대 의대와 대학원에서 해부병리학을 공부한 뒤 10여년간 대학에만 있었다.

교수로 정년을 마칠 셈이었으나 보증을 잘못 서 6백만원짜리 전세집으로 옮기면서 나이 마흔에 개업했다.병원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그러던 중 병원을 다니던 대구시의 한 직원이 “원장님이 의료원을 맡으면 참 좋을텐데”라고 권유해 그는 고민에 빠진다.

그는 스스로 “병을 잘 고치는 명의여서 개업에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고 했다.

개인병원을 열면서 그는 일찌감치 ‘고객 제일주의’를 실천했다.그 이유만으로 그때 단골은 지금도 그에게서 진찰받고 싶어 한다.

얘기를 대구의료원장 공채면접으로 돌리자.

면접관의 질문에 그의 답변. “월급은 생활할 수 있을 정도면 된다.어려운 사람을 위한 대구의료원을 그간 꿈꿔 오던 병원으로 가꾸고 싶다.”

6대 1의 경쟁을 뚫고 취임해보니 대구의료원은 의사도 시설도 축 처져 있었다.개원 이후 한번도 흑자를 내지 못했고 저소득층이나 이용하는 3류 병원이었다.

직원을 한 자리에 모으고 세가지를 약속했다.

여러분에게 정직하겠다,모든 경영자료를 공개하겠다,대구의료원의 미래를 제시하겠다 등.

반발도 있었지만 연봉제 ·인센티브제 등을 도입해 조직의 탄력성을 높였다.‘고객 만족’을 위해 흩어졌던 외래진료를 본관으로 집중시키는 대신 병원 사무실은 옥상으로 옮겼다.

‘환자에게 가장 친절한 병원’은 절대 명제였다.

의료보호환자를 포함,환자가 매년 20% 이상 늘면서 취임 첫해 7천8백만원의 당기 순익을 시작으로 작년까지 3년 내리 흑자경영을 실현했다.

李원장은 그러나 이보다는 대구의료원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뀐 점을 더 큰 보람으로 친다.지역에서 체면을 따지는 인사들도 이제는 병실을 부탁할 만큼 대구의료원이 궤도에 오른 것이다.

지난 5월에는 대구적십자사회장도 맡았다.

서영훈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대구의료원의 성과를 전해 듣고 만년적자인 대구 적십자병원의 쇄신을 맡긴 것.지난 7월 대구시로부터 연임발령을 받은 李원장은 그러나 3년후엔 대구의료원 원장직을 그만둘 생각이다.

타성도 두렵지만 의사로서 오래 ‘꿈꿔온 병원’을 늘리고 싶어서다.

“울릉도나 청송 같은 곳의 보건의료원을 제대로 가꾸고도 싶고 아니면 일상에 쫓기는 자식들이 늙은 부모님을 맡길 수 있는 본격 노인전문병원 분야를 개척할 생각입니다.”

정기환 기자

◇이동구 원장은...

▶1945년 대구 출생

▶72년 경북대 의과대학 졸업

▶76∼85년 경북대 의대 교수(해부병리학)

▶85∼98년 청효정 내과 ·해부병리학과의원

▶92∼94년 미 UCLA 의과대 연구원

▶98년 제6대 대구의료원장 취임

▶2001년 5월 대한적십자 대구지사회장 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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