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영화] '길로틴 트래지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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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거리의 여인' 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향해 예수는 과연 누가 그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할 자격이 있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영화 '길로틴 트래지디' (8일 개봉)의 밑바닥에도 이런 생각이 깔려 있다. 사형수라는 극한 조건에 내몰린 인물을 내세워 인간 존재의 의미를 파고든 우화 같은 작품이다.

그런데 영화 자체가 실제 사건을 기초로 했다니, 역시 현실은 상상보다 훨씬 다단하고 복잡한 모양이다.

'사랑한다면 이들처럼' (1990)으로 프랑스 영화계의 스타로 부상한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은 '길로틴…' 에서 '사랑한다면…' 과 비슷하게 삶에 대한 애정과 두려움을 교묘하게 섞어놓고 있다.

프랑스 혁명 직후 캐나다 근처의 프랑스 섬 생 피에르. 만취한 선원 닐 오귀스트(에밀 쿠스트리차)는 우연히 한 노인을 살해한다. 그야말로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범죄를 모르고 살았던 섬사람들은 그의 처형을 위해 본토에 길로틴(단두대)과 집행관을 보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길로틴은 언제 도착할지 모르고….

영화는 이같은 아이로니컬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죽을 날만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닐(에밀 쿠스트리차), 그에게 묘한 매력을 발견하고 구명 운동을 벌이는 대령 부인(줄리엣 비노쉬), 사형수에게 연민을 느끼는 아내를 묵묵히 지켜보는 대령(다니엘 오테이유), 그리고 사형수의 잇따른 선행에 감화돼 그를 '영웅' 비슷하게 치켜세우는 마을 사람들과 그를 단두대에 올리려고 애쓰는 지방관리들이 축을 이룬다.

카메라는 죄수를 반드시 처형해야 한다는 법적인 당위성과 사소한 실수로 인명을 앗은 사람을 과연 인간이 단죄할 수 있느냐는 도덕적 명분 사이에서 빚어지는 모순과 비극을 담담하게 좇고 있다.

사형수 닐이 대령 부인의 이런저런 일을 도우며 갑자기 선인으로 돌아서고,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매료되는 과정에서 작위적인 과장이 느껴지지만, 외딴 섬이란 고립된 공간을 배경으로 삶의 역설적 측면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감독의 시도는 평가할 만하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인 줄리엣 비노쉬와 다니엘 오테이유의 연기도 안정적이다. 특히 다른 남자를 사랑하는 부인을 안타까운 시선으로 지켜보면서 끝내 비극적인 종말을 맞는 대령역의 오테이유가 깊은 여운을 남긴다.

'아빠는 출장중' 으로 유명한 유고 감독 에밀 쿠스트리차가 배우로 나온 것도 특기사항. 덥수룩한 머리, 불안한 눈빛 등 시한부 사형수의 겉과 속을 매끈하게 소화, 올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18세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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