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해신 - 제1부 질풍노도 (2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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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제2장 신라명신

미데라를 설명하는 책을 읽고난 후 내 역사적 관심은 완전히 신라사부로에서 신라명신(新羅明神)으로 바뀌고 말았다.

신라명신이 일본무사들의 아버지였던 요리요시의 수호신이었고 때문에 요리요시는 아들 요시미쓰가 13살이 되자 신라명신을 모신 신라선신당 앞에서 성인식을 올리고 이름을 신라사부로로 바꿨을 뿐 아니라 신라명신은 또한 미데라의 실질적인 개조인 지증대사의 수호신이기도 한 것이다.

연기(緣記)에서 지증대사는 일본으로 귀국하는 도중 난파 직전에 이르게 되자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중 갑자기 대사 앞에 노옹이 나타나서 '내 이름은 신라명신이다' 라고 기록하고 있지 않았던가. 만약 그 수호신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지증대사의 배는 바다 위에서 난파 당해 물고기의 밥이 되었을 것이다.

지증대사가 갖고 오던 4백41권의 경전도 함께 바다 속에 수장되었을 것이다.

신라명신.

바다 위에 홀연히 나타나서 지증대사에게 미데라의 절터를 일러주고 불법을 호지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사라진 수호신. 지증대사는 무사하게 돌아온 즉시 신라명신이 점지해준대로 오토모들의 씨사였던 미데라에 주석한 후 마침내 859년 제1대 주지로 취임하게 되는 것이다.

지증대사는 또한 자신이 보았던 신라명신의 좌상을 화공을 시켜 만들게 한 후 신라사(新羅寺)란 건물을 짓고 이를 그 신당 속에 봉안하고 자신의 본존이자 수호신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폭풍이 몰아치는 질풍노도의 바다 위에서 지증대사가 만난 노옹은 누구였을까. 바다 위에서 만난 신이라면 그는 분명 바다의 신, 즉 해신(海神)이 아닐 것인가.

해신. 희랍신화에서는 해신을 '포세이돈' 이라고 부른다. 바다 밑 궁전에 사는 포세이돈은 청동의 발굽과 황금의 갈기가 있는 명마들이 끄는 전차를 타고 바다 위를 달린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럴 때면 성난 파도도 잠잠해진다고 전해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증대사가 만났던 바다의 신이 포세이돈이었단 말인가. 아니다. 그 바다의 신은 스스로 자신의 이름을 이렇게 명명하고 있지 아니한가.

"내 이름은 신라명신이다. 나는 이제부터 그대의 불법을 호지해줄 것이며 그대가 가져가는 경전 또한 보호해줄 것이다. "

신라명신.

지증대사가 858년 6월 폭풍의 바다 위에서 만났던 바다의 신. 그는 도대체 누구며 어떻게 생긴 인물인가.

내 역사적 관심은 이렇게 해서 신라사부로에서 신라명신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리하여 지난 겨울.

나는 미데라의 장리 앞으로 장문의 편지를 썼다.

다행히 미데라를 소개하는 책자 맨 뒷장에는 초대 엔친(圓珍)으로 시작되는 장리보(長吏譜)가 게재되어있었던 것이었다. 1대로부터 시작된 족보 맨 뒤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162대 슌묘(俊明)'

책자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현재 미데라의 주지는 162대의 장리인 '슌묘' 인 것이다.

나는 그 즉시 슌묘 주지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우선 내 소개를 상세히 한 다음 신라사부로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최근에 우연히 신라명신을 추적하게 되었다는 내용을 적고 마지막으로 귀사에서 봉안하고 있는 신라명신상을 직접 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베풀어주실 수 없느냐는 비교적 긴 편지를 썼던 것이었다.

편지와 함께 최근에 일본에서 출간된 내 작품『잃어버린 왕국(王國)』의 전5권도 함께 우송하였다.

왜냐하면 국보인 신라명신을 함부로 외부인에게 공개하여 보여줄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며, 특히 일본인도 아닌 외국인에게 보여주려면 무엇보다 편지를 보낸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올 초 편지를 보내고 난 후 나는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달이 지나고 두달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승낙이든 거절이든 반드시 회신을 보내는 일본인들의 특성을 아는 나는 끈질기게 답장을 기다렸다.

그러다 마침내 지난주, 나는 그토록 기다리던 답장을 받은 것이었다.

글=최인호

그림=이우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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