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한국경제 왜 어려운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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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도 재정지출의 확대와 금리인하를 통해 급속한 경기하락에 대처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경제가 어려워지는 근본원인은 단기적인 경기대책이 없어서가 아니라 장기적인 성장전략이 없어서라는 데 있다. 전술은 있으나 전략이 없는 것이 우리 경제의 최대 약점이다.

***미래에 대한 청사진 없어

지금 당장의 경기하락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과 구상이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세계화.정보화, 그리고 중국의 대두 등 새로운 도전과 발전의 기회를 맞이해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과 비전이 없고 그를 향한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국가노력이 보이지 않으니 한국경제의 앞날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가 없다.

그러니 아무리 연기금을 집어 넣어도 주가가 오르지 않고 이자율을 낮춰도 투자 마인드가 살아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첫째, 우리는 그동안 과거형인 방어적 구조조정만 하였지 미래형인 공격적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다. 본래 구조조정에는 두 가지가 있다. 방어적 구조조정은 과거의 잘못을 고치는, 즉 기업의 부실투자와 은행의 불량채권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이다. 소위 과잉투자.과잉부채.과잉고용을 정리하는 구조조정이다.

반면에 공격적 구조조정은 기업과 은행의 수익구조와 국제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경영전략 및 경영전반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핵심역량과 새로운 비교우위 부문을 창출하는 구조조정이다.

따라서 이러한 공격적 구조조정에는 기술.상품.공정.마케팅.부품 등 기업경영의 각 부문에 걸쳐 선택과 집중의 혁신전략 및 동시에 해외의 경영자원과 선진기술 등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글로벌 네트워크 전략이 포함돼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구체적으론 새로 등장하는 거대 중국시장과 일본시장을 한국경제의 내수시장화(內需市場化)하는 '한국기업의 세계화 전략' 이 나와야 한다. 이 일을 해내는 것이 미래형인 공격적 구조조정이다.

그런데 우리는 본래 원칙에 따라 단호하게 그리고 가능한 단기간 안에 끝내야 하는 과거형 구조조정을 아직 수년간 질질 끌어오고 있다. 그리고 미래형은 본격적 시작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어찌 우리 기업의 미래, 우리 산업의 미래에 대하여 희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둘째, 세계화.정보화 시대에는 모든 경제정책의 초점이 경제의 총 공급능력의 제고, 경제성장력의 확충에 놓여져야 한다. 과거에는 총수요관리가 중요정책 과제였지만 세계화시대에는 그 중요성과 효과가 크게 약화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경제의 총 공급능력을 높이는 정책은 대단히 취약하거나 산만하고 비체계적이며, 경제정책은 주로 경기대응적인 총수요관리 중심으로 운용돼 왔다.

따라서 시급한 것은 경제의 잠재성장력과 총 공급능력을 높이는 정책이 확충 강화돼야 한다. 예컨대 사유제의 보호와 경제질서정책의 강화, 부정부패의 척결, 교육 및 인적자본의 개발, 사회자본의 확충, 과학기술정책과 신산업정책의 강화, 규제혁파와 공공서비스의 개혁, 관민학연(官民學硏)의 국가혁신체제의 구축, 지방경제의 특화와 사회간접자본의 확충 등에 좀 더 종합적.체계적 정책 노력이 집중돼야 한다.

***총 공급능력 제고 주력을

그리하여 한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과 희망을 보여야 한다. 예컨대 한국이 중국과 동남아의 저임금 추월과 미국.일본의 선진기술장벽을 어떻게 뛰어넘을 것인가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보여야 하고 그러한 방향으로의 움직임이 국가적 차원에서 체계적.조직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우리 경제의 총 공급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종합적인 '국가전략' 과 이를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효과적인 '추진기구' 가 나와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당장은 어려워도 우리 경제의 미래에 대해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정부가 추진 중인 총수요관리형 경기대책도 그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문제는 현재의 어려움이 아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데 있다.

朴世逸(서울대 교수 ·법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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