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오르는 몸이 무거웠던지
새벽녘 능선 위에 걸터앉아 쉬고 있다
신(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때로 그녀도 발에 흙을 묻힌다는 것을
외딴 산모퉁이를 돌며 나는 훔쳐보았던 것인데
어느새 눈치를 챘는지
조금 붉어진 얼굴로 구름 사이로 사라졌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저만치 가고 있다
그녀가 앉았던 궁둥이 흔적이
저 능선 위에는 아직 남아 있을 것이어서
능선 근처 나무들은 환한 상처를 지녔을 것이다
- 나희덕(1966~) '상현(上弦)' 중
"神도 이렇게 들키는 때가 있으니!" 무척 아름다운 시다. 이처럼 선명하게 아름다운 시에는 '해설' 이 필요없는 법! 능선 위에 아슬히 걸터앉았다가 붉어진 얼굴로 사라져가는 달의 운행을 가만히 지켜볼 뿐.
이시영 <시인>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