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지식인 연대 '지방분권법' 청원운동키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지방의 지식사회가 움직이고 있다. 지방에 재직하고 있는 대학 교수를 비롯해 교육계.종교계.문화계.여성계 2천여명이 지방분권을 위한 모임을 결성하고 특별법 제정을 위한 청원 운동에 들어간다. 이들은 다음달 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모여 '지역 지식인 선언' 을 채택한다.

지방자치가 시작된 지 10여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비효율적인 중앙집중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철저하고도 체계적인 지방분권을 통해 새로운 한국 사회의 발전전망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는 지방의 지식사회가 집단적으로 지역을 넘어 전망을 공유하려는 움직임이어서 향후 한국 지식사회의 지형에 중요한 변수로 등장할 전망이다.

이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지난해 10월. 각 지역에 기반을 둔 연구자들의 모임인 대구사회연구소(소장 김형기 경북대 교수).전남사회연구회(나간채 전남대 교수).부산경남지역사회연구센타(회장 황한식 부산대 교수).호남사회연구회(회장 이중호 전북대 교수).대전충남지역사회연구회(회장 이선근 충남대 교수) 등이 연구단체 협의회를 만들고 분권운동을 적극 추진키로 하면서부터다.

여기에 최근 (가칭)강원지식인연대(추진위 간사 안동규 한림대 교수)가 발족되고 김병준 교수(국민대 행정학).이재은 교수(경기대.행정학) 등 서울 지역의 교수들이 본격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이 가능했던 것은 기본적으로 교수를 비롯해 지방에 배치된 지식사회의 용량이 커졌기 때문. 1970, 80년대 배출된 많은 연구자들이 지방에 자리잡으면서 중앙과 차별화되는 각 지역의 독자적 지식생산에 나섰다. 10여년 전부터 지역별로 시작한 지역연구는 전국적으로 확산됐고 이들이 바로 이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 청원운동에 많은 지방 지식인이 결집하게 된 이유는 지방분권이 지역패권주의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지역패권주의를 '지금과 같이 정치권력.경제력.문화자원이 서울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배타적으로 장악하기 위한 정치세력이 지역을 볼모로 하는 권력다툼' 으로 이해하고 지방분권을 통해 지역패권주의를 극복해나갈 수 있다고 본다.

나아가 이를 통해 참여민주주의 확산을 시도하고 있다. 권력교체로 정치적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척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 민주주의가 내재화되지는 못했다는 것. 따라서 지방분권을 통해 주민자치를 유도함으로써 전근대적 지역사회의 혁신을 꾀하고자 한다.

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이제 한계에 이른 중앙집권적 발전전략 대신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제시코자 하는 것. 지역간 협력과 경쟁을 통해 통일한국의 사회적 통합이라는 장기적 과제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지방분권은 필수불가결한 선결조건이라는게 이들의 인식이다.

이들 지방의 지식인들은 다음달 3일 있을 '지방분권 실현을 위한 전국 지역지식인 선언' 을 기점으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다. 1차적으로 시민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운동을 벌이면서 정책대안을 만들기 위한 기획단을 조직한다.

11월 초 정책대안 제시를 위한 심포지엄을 거쳐 본격적으로 지방분권 특별법 청원운동에 들어가며 이를 내년 대선의 주요한 이슈로 삼을 예정이다.

이 운동의 특징을 나간채 교수는 "기본적으로 지역의 자생력과 자기결정력을 강화함으로써 지역패권주의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확대심화하기 위한 전략이자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을 제시하기 위한 지역 지식사회의 총체적 운동" 이라 요약한다.

나아가 김형기 교수는 "기존의 진보.보수를 뛰어넘어 지역의 모든 지식사회가 인식과 전망을 공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 이라고 그 의미를 평가한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