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팔레스타인 "타협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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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지난해 9월 촉발된 중동분쟁이 날로 악화되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양측 모두 강경파의 목소리에 눌려 협상파와 온건파들의 발언권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특히 양측 강경파들은 각각 "힘에 의한 평화" 와 "성전(聖戰)" 을 주창하면서 이를 국내정치에서의 지지기반 강화전략으로 활용하고 있다.

◇ 이스라엘=분쟁의 악화는 지난 2월 이스라엘 총선에서 강경파 아리엘 샤론이 압승, 총리에 당선되는 순간부터 이미 예견됐던 것이다. 샤론은 국방장관 재직시절부터 소문난 강경파로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은 그를 '살인자' 로 지목해왔다.

샤론은 취임 후 "중동 정치의 유일한 수단은 외교가 아닌 군사력" 이란 신념대로 힘의 정책을 사용해 왔다.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을 전투기와 탱크를 동원, 공격하고 PLO의 대외 대표부격인 오리엔트 하우스를 폐쇄시켜버렸다.

샤론이 이처럼 지나친 강공책을 펴자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비난이 급증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최대 일간지 하레츠는 "샤론 총리는 군사.외교 양면에서 장기적 전략이 없이 즉흥적인 대응으로만 일관하고 있다" 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론의 인기는 여전히 하늘을 찌르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는 샤론의 인기가 70%를 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팔레스타인과의 대화를 우선했던 노동당 정권이 얻었던 지지보다 최소한 10%포인트 이상 높은 것이다.

이 때문에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 샤론이 자신의 정치생명을 죽일지도 모르는 협상으로 회귀할 가능성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이같은 국내정치와 팔레스타인 정책의 함수관계를 샤론이 즐기는 동안 평화의 전망은 더욱 멀어져 가고 있다.

샤론은 지난주 "테러가 멈출 때까지 우리는 싸울 것이고 그럼으로써 정치적 지지를 유지할 수 있다. 이는 매우 미묘하고 복잡한 게임" 이라고 말했다.

◇ 팔레스타인=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사정은 더욱 복잡하다. 해외언론들은 분쟁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고 분석하고 있다. 11개월 사이에 5백명 이상의 희생자를 내는 동안 점점 강경파가 득세하면서 아라파트의 발언권이 급격히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라파트는 지난해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상에 실패함에 따라 성전(지하드)의 전면중단을 호소할 수 있는 권위와 근거를 상실한 상태다.

자치정부는 주류정파인 '파타운동' 에 강경파인 민주해방전선과 인민해방전선 등이 가세하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비롯한 강경파들은 '타협없는 무장투쟁' 만을 주장할 뿐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의한 자치의 점진적인 확대에 합의한 1993년의 오슬로 협정을 기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

아라파트는 지난 6월 미국의 중재로 이스라엘과 일시휴전에 합의한 뒤 무장조직에 대해 테러중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무장조직의 지도자들은 "아라파트의 명령은 단지 대외용에 불과하다" 면서 "우리 자신의 안전을 위한 싸움인데 자치정부의 허가를 받을 필요가 있느냐" 는 분위기다.

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도자들에 대한 표적살해에 나섬에 따라 자신의 생명도 안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아라파트의 입지가 안팎에서 흔들리는 동안 팔레스타인의 희생은 점점 더 커져가고 있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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