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민심 모르는 여야 지도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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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한나절의 반란' 으로 끝난 민주당 김중권(金重權)대표의 '당무거부' 소동은 씁쓸한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민주당 이호웅(李浩雄)대표비서실장은 27일 金대표가 출근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에게 민심이 제대로 전달돼야 한다" 고 말했다. 하루 만인 28일 당무에 복귀한 金대표도 청와대 비서진을 공개적으로 질타했다. 말은 이리저리 돌렸지만 요점은 간단하다. "金대통령의 눈과 귀가 '인(人)의 장막' 에 가려 있다" 는 것이다. 지난 5월 안동수(安東洙)전 법무장관 임명파동 때 민주당 초.재선 의원들이 집단적으로 제기한 주장과도 일치하는 걸 보면 근거가 없지는 않은 것 같다.

사실 '인의 장막에 둘러싸인 대통령' 은 어제 오늘 얘기가 아니다. 4.19 의거로 이승만(李承晩)대통령이 실각했을 때도 "대통령은 훌륭한데 부하들이 망쳤다" 는 소문이 무성했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 때도 비슷한 얘기가 나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예나 지금이나 결론은 똑같다. "결국 모든 책임은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있다" 는 것이다.

책임 문제는 나중 일이라 치더라도, '국민의 정부' 를 자처하는 현 정권 내에서조차 이런 '비(非)국민적 상황' 이 발생한다는 사실이 국민들을 우울하게 만든다.

金대표가 당무에 복귀하기로 한 뒤 대표 본인이나 청와대비서진이 보인 반응도 어이없긴 마찬가지다. 삼척동자가 다 아는데도 청와대측은 "당무 거부가 아니라 몸이 아팠을 뿐" 이라고 호도했다. 金대표는 "언론이 만들어낸 얘기" 라고 발뺌했다.

민주당이 내분에 휘말렸던 27일 한나라당은 워크숍을 열었다. 이 자리에선 이회창(李會昌)총재에 대한 일부 의원들의 낯간지러운 충성 발언이 나왔다. "머리가 너무 좋으시고 인간적으로 정치적으로 원숙한 경지에 오른 총재" "의원 배지를 버릴 생각으로 총재의 대통령 당선에 나서자" ….

한나라당이 민주당의 처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배우지 못한다면 그 또한 불행이다. 인의 장막은 맹목적인 충성파가 만든다. 지도자는 민심과 멀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는 오랜 교훈을 金대통령이나 李총재가 되새겨줬으면 한다.

김종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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