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초대 법률고문 골드먼삭스 편에 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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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의 기습’을 당한 골드먼삭스가 감독당국을 상대로 반격 채비에 나섰다. 먼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 법률고문을 지낸 거물급 변호사를 고용했다. 미국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20일(현지시간) 골드먼삭스가 워싱턴의 법률회사 스캐든 알프스의 파트너인 그레고리 크레이그(65·사진)를 영입했다고 보도했다. 스캐든은 골드먼삭스와 오래전부터 거래해 온 법률회사다.

크레이그는 본래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사람이었다. 대학생 시절 베트남 반전 시위를 함께 했고, 예일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도 같이 받았다. 그는 클린턴이 백악관 인턴 르윈스키와 스캔들을 일으켰을 때도 클린턴을 위해 변호팀을 이끌었다. 변호사로서 그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암살 미수범 존 힌클리 주니어의 변호를 맡았을 때 정신질환자라는 이유로 그의 석방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는 2007년 3월 오바마 상원의원이 대통령 선거 출마의 뜻을 밝히자 뜻밖의 선택을 했다. 힐러리 클린턴 대신 오바마 캠프로 간 것이다. 그 덕에 국무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던 그는 오바마의 취임 후 법률 고문이 됐다. 남미와 가까운 그는 소니아 소토마요르 판사를 연방 대법관으로 발탁했고, 관타나모 기지 폐쇄에도 앞장섰다. 관타나모에서 벌어진 가혹행위 공개에도 그의 입김이 작용했다. 그러나 결국 관타나모 기지 폐쇄를 너무 급진적으로 밀어붙이다 백악관에서 밀려났다.

미국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왼쪽)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가운데), 메리 샤피로 증권거래위원회 위원장(오른쪽)이 20일(현지시간) 리먼 브러더스의 파산과 관련한 하원 금융위원회의 청문회에 출석했다. 이들은 금융시장에 더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워싱턴 AP=연합뉴스]

강경 진보파였던 그가 이번엔 골드먼삭스의 변호에 나서자 백악관도 적지 않게 당황해하고 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로선 크레이그가 골드먼삭스의 변호인단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상당한 부담을 느낄 수 있다. 백악관의 한 관리는 “백악관 직원은 2년 동안 행정부와 이해 상충이 되는 자리를 맡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레이그는 “나는 변호사일 뿐 로비스트가 아니기 때문에 2년 제한 규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고 일축했다.

그렇지만 골드먼삭스가 SEC와 정면 승부를 벌이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도 많다. 앞으로도 계속 월가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골드먼삭스로선 SEC와 사생결단을 내는 게 부담스러울 수 있다. 이 때문에 골드먼삭스는 이번 사건이 월가의 스캔들이 아니라 정치 문제로 변질되기를 내심 바라고 있다.

마침 공화당 진영에선 SEC의 제소 내용보다 시점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금융개혁법안을 중간선거의 이슈로 내세운 상황에서 SEC가 골드먼삭스를 제소한 건 백악관과의 사전교감이 있었다는 시각이다. 공화당의 대럴 아이사 상원의원은 SEC에 편지를 보내 이를 공개적으로 추궁하며 관련 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물밑에선 각계에 퍼져 있는 골드먼삭스 인맥이 움직이고 있다. 재력가나 오피니언 리더 사이에서 골드먼삭스에 우호적인 여론을 만들기 위해서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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