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현대건설 지원 직접 개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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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부가 지난해 11월 자금난에 빠진 현대건설을 공기업이 지원하도록 공문을 통해 지시한 사실이 밝혀졌다.

본지가 최근 입수한 이 공문은 재정경제부장관(陳稔부총리) 명의로 농림부장관.건설교통부장관.한국토지공사 사장 앞으로 보낸 것이다.

'경제장관간담회 회의 결과 통보' 란 제목의 이 문서는 두쪽 분량으로 첫쪽에는 "오늘(11월 14일) 경제장관 간담회에서 논의된 서산간척지 관련 처리사항을 별첨 통보하오니 시행에 만전을 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적혀 있다.

둘째쪽은 '별첨' 으로 ▶현대건설 서산농장 매각과 관련해 토지공사는 현대건설과 매매위탁 계약을 체결하여 일반매각 업무를 대행토록 하고 ▶만약 현대건설과 체결한 매매위탁 계약기간(1년) 중 일반매각이 완전히 이뤄지지 못할 경우 김포매립지 매입 사례에 준하여 잔여토지를 농업기반공사가 매입하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당시 현대건설은 1차부도(2000년 10월 30일)를 맞는 등 자금난에 빠져 서산간척지를 팔려고 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이에 정부가 공기업인 토지공사에 지시해 이 땅을 대신 팔아주기로 한 것이다. 토지공사는 이 공문에 따라 다음날인 15일부터 세 차례에 걸쳐 주택은행에서 총 3천4백50억원을 융자 받아 현대건설측에 땅값조로 미리 줬다.

특히 이 공문의 별첨 3항에는 '토지공사의 매매위탁 계약 이행 과정에서 토지공사와 농업기반공사의 손실은 없도록 한다' 고 돼있다.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당시 토지공사와 농업기반공사는 현대를 지원하면 손해볼 게 뻔하다고 강력히 반발했었다" 며 "정부가 이같은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경제장관들이 손실이 없도록 보증해 주겠다는 내용을 문서로 써 줘 현재도 '경제장관 집단 보증' 내용으로 알고 있다" 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경부 담당자는 "그런 종류의 정부 문서는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 고 부인했으나, 다른 관계자는 "관련 경제부처와 토지공사 등에 이같은 내용의 공문을 보낸 사실이 있으며 현재도 정부 문서로 보관돼 있다" 고 확인했다.

한편 이 공문에는 지난해 11월 14일 간담회를 연 것으로 돼 있으나 과연 간담회가 있었는지 의문이고, 설령 경제간담회가 열려 이런 결정을 했어도 법적인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陳부총리의 한 측근은 "陳부총리는 이날 오전 8시 국무회의 참석과 11시 국제통화기금(IMF) 협의단 방문 접견, 오후 6시30분 SBS창사 10주년 기념 리셉션 참가 등 외에는 경제장관 간담회 같은 다른 공식.비공식 행사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고 말했다.

김시래.김남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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