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기 안전 과연 후진국 수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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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미국 연방항공청(FAA)으로부터 항공안전 2등급 판정을 받자 과연 우리나라가 항공안전 후진국 수준인지 궁금해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일부에서는 "우리 국적기가 특별히 불안한 것도 아닌데 미국이 자국민을 보호한다며 자신들의 제도적 기준을 일방적으로 강요한 것 아니냐" 고 말한다.

일본도 1998~99년 FAA의 안전 점검과정에서 곤욕을 치른 바 있다. 일본과 미국의 항공 법령 체계가 달랐던 탓이었다. 일본과 법령 체계가 비슷한 우리가 이번에 2등급 판정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한마디로 이번 FAA의 판정은 승객들이 우리 국적기를 안심하고 탈 수 있는지를 조사한 게 아니다. 우리 항공당국이 사고 예방이나 사후조치를 위해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와 FAA의 최소 기준(법령 등)을 얼마나 갖추고 있는지를 점검한 결과일 뿐이다.

건교부 함대영 항공국장도 "미국이 지나치다는 일부 지적이 있겠지만 국제기준에 비해 우리나라가 낙후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 2등급 판정을 계기로 획기적인 개선하는 게 필요하다" 고 지적한다.

특히 우리나라가 세계 10위권의 항공운송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법령 정비와 전문인력 확보는 FAA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국제수준으로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19일 제시한 대책도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우선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항공법 개정안의 골자는 항공운송 사업자에 대한 안전기준을 대폭 강화해 항공안전 관리 시스템을 ICAO와 FAA에서 정한 국제 수준으로 보완하자는 것이다.

개정안은 정기항공 운송사업에 종사하는 기장 자격만을 심사토록 한 항공법을 보완해 앞으로 정기.부정기 항공운송사업 기장은 물론 부조종사도 자격 심사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건설교통부에 항공사고 조사위원회를 설치, 사고 원인을 과학적으로 규명해 예방 대책을 마련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FAA의 2등급 판정의 주요 원인이었던 항공 전문인력 증원과 교육 대책도 마련했다.

현재 국내 항공사들은 11개 기종을 보유중이지만 이를 감독하는 운항심사관은 2명에 불과하고 이들이 따낸 기장 자격도 2개 기종뿐이다.

FAA가 "한국 항공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전체 기종에 대해 운항심사관들이 피검자 수준의 자격은 갖춰야 하지 않느냐" 고 지적하자 건교부는 부랴부랴 운항심사관 11명을 추가 선발해 교육 중이다.

오는 10월말까지 11명이 1~2개 기종씩, 국내 항공사가 보유한 모든 기종 심사 자격을 갖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만일 FAA의 점검과 요구가 없었다면 우리 정부가 이처럼 신속한 조치를 취했을까 하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우리 정부는 98년 정부조직 개편 당시 구조조정을 이유로 건교부 항공국 전문인력을 18명에서 6명으로 줄였다.

또 규제완화 차원에서 항공종사자 자격 관리 업무를 교통안전공단으로, 운항 개시 검사를 항공사로 이관하는 등 모두 7개 업무를 위임했다.

이번 FAA 판정에 대해 항공사 관계자들은 "운동경기로 따지면 선수의 자질이 아니라 감독에게 문제가 있다고 엘로카드를 내민 셈" 이라며 "정부의 늑장 대응으로 인해 오히려 항공사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 는 입장이다.

일부에서는 "사고 항공사에 대한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제재조치가 이 같은 상황을 가져왔다" 고 말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화물기의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항공사에 대해 전면 운항정지 조치까지 내리는데 우리는 해당 노선의 면허만 취소하는 수준에 그치기 일쑤라는 것이다.

항공사들은 이번 FAA의 판정이 우리 국적기의 안전 운항과는 직접 관련이 없으며 정부의 항공안전 정책.시스템에 대한 판정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강갑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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