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46% "신규투자 축소 · 연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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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기업들의 설비 투자 위축이 위험 수위에 도달했다.

은행들의 시설자금 대출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연말까지 투자를 더 줄이거나 내년 이후로 투자를 미루겠다는 기업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이후 8개월째 줄어들고 있는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당분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20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중 은행들의 시설자금 대출은 1천1백54억원 줄어들었다. 지난해 상반기에는 시설자금 대출이 9천4백63억원 증가했다.

또 한은이 지난달 말 주요 업종의 대표 기업 87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규 투자를 줄이거나 내년 이후로 미루겠다는 기업이 46%에 달했다. 늘리겠다는 기업은 5.8%에 불과했다.

이같은 설비투자 위축으로 올해 경제성장률이 0.6%포인트, 내년 성장률이 1.3%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LG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연구원은 또 설비투자가 계속 부진할 경우 잠재성장률(물가에 주름살을 주지 않으면서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이 4% 밑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외환위기 당시 1년6개월 동안 설비투자가 계속 감소세를 나타내는 바람에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1997년까지의 6.5% 수준에서 98~2000년 중 4.8%로 하락했다는 게 LG경제연구원의 추정이다.

기업들은 설비투자를 줄이는 이유로 현재 경기가 부진하고(15%), 앞으로도 경기가 언제쯤 회복될지 불투명하다는 점(36%)을 꼽았다고 한은은 밝혔다.

돈이 없어 투자를 줄이거나 미루겠다는 기업(재무구조 개선 16%, 현금 유동성 확보 12%)보다 경기(景氣)때문에 투자를 줄이겠다는 기업이 훨씬 많았다.

한편 기업들은 올들어 7월까지 회사채를 발행해 14조원의 자금을 확보했다.

이 중 절반 정도는 연말까지 만기가 닥칠 회사채를 갚기 위해 미리 쌓아놓은 자금으로 파악됐다. 나머지 7조원은 기업들이 움켜쥐고도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홍익대 박원암 교수는 "기업 구조조정을 서둘러 시장의 불확실성을 줄여야 한다" 며 "기업지배구조 개선, 경영의 투명성과 관계없는 규제들을 과감히 풀어 기업들이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할 시점" 이라고 지적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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