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포럼] 자립형 사립고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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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둘러싼 혼선이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미 희망하는 사립고의 신청을 받는 절차에 들어갔는데 서울시교육청은 "신청절차는 밟더라도 교육부에 추천하지는 않겠다" 고 버티고, 전교조는 '서울시민의 65%가 자립형 사립고 도입에 부정적' 이란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으며 반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교육부를 향해 "지금까지 뭘 했느냐" 는 비난도 거세다. 이대로 과연 제도 자체가 시행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얽히고 설킨 우리 교육정책의 단면을 보는 느낌이다.

*** 私學의 제자리 찾기 시동

자립형 사립고 문제가 왜 이렇게 꼬였는가. 학생 선발과 수업료 책정, 교육과정 운영이 상당부분 자율화되는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결국 고교 평준화와 중등 사학(私學)정책의 근간을 건드린다. 이 때문에 여러 입장이 대립할 수밖에 없다. 교육부가 1995년 자립형 사립고 도입을 거론한 지 6년 만에 실행을 결정한 것도 이 입장을 조정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1974년 시작한 고교 평준화제도는 중학교에서의 입시병을 해소하고 고교 교육기회의 균등화에 크게 공헌했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 때마다 찬성비율이 대체로 70% 이상으로 나온다.

그러나 다양성.자율성 시대를 거스르는 획일화와 교육수요자의 학교 선택권 배제, 학력의 하향 평준화, 교실 붕괴 등 평준화 해제론자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목소리는 정부 내에서도 제기된다.

평준화 보완책으로 도입한 과학고.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까지 실패한 마당에 교육부는 자립형 사립고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편 우리나라 1천9백69개의 전체 고교 가운데 47%인 9백30개교가 사립이고, 고교생 1백91만여명 가운데 54%인 1백3만명이 사립고에 재학하고 있다. 외국에 비해 사립의 비중이 월등히 크다. 민간이 세운 이들 사립고가 국가를 대신해 교육 수요를 충족시켜온 공적은 인정해줘야 한다.

그런데도 이들 사립고는 평준화 이후 학생 선발이나 수업료 책정권에서 배제돼 '준공립' 처럼 운영돼 왔다. 독자적인 건학이념은 무용지물이 됐고 정부의 재정 도움을 받지 않고 학교를 운영하는 고교가 37개교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화됐다.

이런 상황에서 '사학의 제자리 찾기' 요구가 나올 수밖에 없고, 교육부는 자립이란 단서를 달아 자율을 허용하는 절충점을 찾았다.

그러나 두마리 토끼를 쫓는 자립형 사립고 도입은 그만큼 우려되는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전교조와 참교육학부모회 등은 자립형 사립고가 부모의 재산에 따라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초래하고 결국은 입시 위주의 귀족학교로 전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립형 사립고에 진학하기 위해 중학에서 입시병이 도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서울시교육청의 '시기상조론' 도 이런 바탕에서 나왔다.

앞으로 자립형 사립고가 생기면 과연 어떻게 될까. 얼마전 TV토론에서 전화로 대화를 나눈 사립고 교장 두분은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 "똑똑한 아이들 뽑아 비싼 돈 받고 가르치는데 명문대에 많이 넣는 것이 학부모들의 기대가 아니겠는가. " 여러 사람의 우려대로 입시 위주의 교육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자립형 사립고 시범 도입을 원점으로 돌릴 수는 없는 일이다. 예상되는 부작용을 막을 지혜를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자립고 선정조건 가운데 '분명한 건학이념과 특정분야 인재를 육성하기 위한 특성화한 교육프로그램 운영' 이라고 명시된 입시교육 예방항목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심사과정에서부터 엄중 감시돼야 한다. 특수목적고 파행 때처럼 어물쩍 넘어가선 안된다.

*** 부작용 막는 지혜 찾아야

서울시교육청은 현재의 방침이 법적.행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혹시 이로 인해 제도 도입을 기다려온 사립고나 중3 학생.학부모로부터 원성을 사는 일은 없을지 신중하게 검토해줬으면 한다. 서울이 빠지면 자립형 사립고는 어차피 반쪽의 반쪽이 될 수밖에 없다.

한천수 <사회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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