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으로 세상보기] 잠재력 큰 배아간세포 연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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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지난 수개월 동안 배아간세포를 중심으로 한 생명윤리 논쟁이 한창이다. 반대하는 쪽에서는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이 세포를 연구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생명에 대한 경시이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도전이라 주장한다.

반면 과학자를 중심으로 한 전문가 집단들은 각종 불치병을 치료하는 데 활용될 수 있는 세포에 대한 연구를 원천적으로 금지시킬 수 있는 규제(안)에 대해 반대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을 하면 1개의 세포가 되고, 이것이 2개, 4개씩 대충 이분법으로 분열해 나간다. 수정 후 4일이 되면 50여 개의 세포로 구성된 공 모양의 세포 집단이 생기는데 이때는 프로그램이 완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라 여러 종류의 세포로 발전해 나갈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어 이를 배아간세포라 부른다.

실제 이 세포들을 분리하여 실험용기에서 기르면 신경세포.췌장세포.혈액세포 등으로 분화하는 것이 발견된다. 지금까지 연구결과에 따르면 이를 이용하면 치매.파킨스병.루게릭병.당뇨병.심장병 등 수많은 난치병에 대한 치료제를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아간세포 연구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몇 가지 중대한 착오를 범하고 있다. 첫째는 여성의 자궁이 아니라 튜브에 있는 이 50여 개의 세포들을 생명으로 보는 데 대한 과학적.법적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다. 불임부부에게 체외수정은 합법적인 문제해결 방법인데 이 과정에서 수정된 세포를 냉동고에 저장하고 불필요할 때는 수시로 폐기도 한다.

그러나 보수적인 윤리관을 가진 사람도 이를 살인이라 부르지 않는다. 당분간 배아간세포 연구에 사용될 세포들은 이와 같이 폐기될 수정란들이다.

둘째는 윤리적 과오다. 50여개로 구성된 세포들이 생명인지 아닌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마당에 이에 대한 연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이미 생명으로 어엿하게 존재하는 수많은 불치병 환자들에게서 가느다란 희망마저 앗아가는 격이다. 산 자의 콩팥을 공유하고 죽은 자의 장기도 떼어내 이식하는 마당에 튜브에 있는 50여개 세포에 대한 연구를 금지시키는 것은 윤리적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다.

셋째는 전략적 실수다. 생명윤리 논쟁의 핵심은 임신중절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의 임신중절 국가다. 이에 대한 치열한 논쟁이나 제도적.문화적 개선 노력은 거치지 않은 채 실험실 용기의 세포를 생명이라 주장하는 것은 문제의 핵심을 흐트러뜨리는 행위다.

배아간세포 연구에 대한 산업적 중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미국에서는 이미 배아간세포를 활용하는 특허에 대한 기술료 지급 문제가 의회에서 거론되고 있을 정도다. 인력.재원.과학적 인프라 등에서 아직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연구행위에 대한 법적 규제는 걸음마를 겨우 마친 한국 생명과학계에 족쇄를 채우는 행위가 될 따름이다.

배아간세포에 대한 연구는 윤리 논쟁의 추상성에 비해 기초과학적 중요성은 물론 의학적.산업적 잠재력이 매우 크다. 그런 만큼 반대론자들은 보다 합리적으로 문제에 접근하고, 찬성론자들은 이들에게 설득력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관련 부처들은 건설적인 대화를 유도하되 궁극적으로는 소신 있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金善榮 <서울대 교수.유전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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