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김수영 '채소밭 가에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무성하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 김수영(1921~1968) '채소밭 가에서'

이 시는 종래의 평이한 해석을 거부하는 시다. 강바람을 느끼듯이 그냥 김수영의 리듬을 호흡하면 되는 것이다. 작품을 반복해 읽어나가면서 팔뚝을 타고 오는 어떤 기운을 느낄 수 있다면 더욱 좋고.

초기 시(1957년)임에도 이미 김수영의 리듬이 도저하고 확고해서 앞으로 그가 한국 현대시의 중요한 흐름으로 자리잡으리라는 걸 예감케 한다.

놀라운 것은 오늘 읽어도 그의 리듬이 새로운 느낌을 준다는 것. 온몸으로 근대 도시를 통과해온 그것이기 때문이리라.

이시영 <시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