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돌아온 유나바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하버드대 출신의 수학천재 카진스키(58)는 현재 종신형을 받고 복역 중이다. 1995년 체포 때까지 16차례의 폭탄테러로 3명이나 살해했기 때문이다.

주로 애용한 우편물 폭탄을 대학(university)과 항공사(airline)에 보냈다 해서 유나바머(Unabomber)로 통하는 이 극단의 반(反)과학 테러범은 지금도 화끈한 뉴스원이다.

CNN 등은 인터뷰 한번 하자고 안달이다. 코방귀 뀌는 건 유나바머 쪽. 구걸에 가까운 인터뷰 요청 편지를 공개해버려 방송사 망신을 줄줄이 시킨 게 올해 초 일이다. "나를 진지하게 보라" 는 암시의 깜짝쇼다.

그가 과연 미치광이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그를 옹호했던 거물이 있다. 진짜 거물이다. 클린턴 시절 대통령자문위 의장이었던 최고의 컴퓨터 과학자 빌 조이가 그였다. 미국이 깜짝 놀랐다.

폭탄테러의 목표물이었을 그 과학자가 '미친 테러범' 을 옹호하다니!

더없이 진지한 옹호의 글이 지난해 초 와이어드지(誌)에 실린 유명한 기고다. '미래는 왜 인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인가?' .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은 글은 유나바머의 경고를 인용하면서 막가는 생명공학과 로봇의 개발이 인류멸종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묵시록적 경고로 일관한다. 생각하는 로봇들이 '자기복제라는 판도라 상자' 를 열게 될 경우 재앙은 그때 시작된다는 시나리오다.

서구 반향은 폭발적이었다.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지(紙)는 글 전문을 게재했다. 자그마치 중편소설 분량이다.

문제는 우리 사회다. 『녹색평론』을 제외한 모든 대중매체가 그의 글을 외면했다. 아니 몰랐다. 지구촌 변방 한국은 이토록 나홀로 안녕하다.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선진국과의 정보격차도 문제지만, 개발.발전 쪽에 코 박은 지식수입 구조가 더 큰일이다.

'제1세계보다 더 1세계적인' 심리구조 말이다. 그 맹점을 깨우쳐준 것이 '행복한 책읽기' (본지 8월 4일자 34면)에 소개된 신간 『위기의 현대과학』이었다.

국제포럼인 '제3세계 네트워크' 산하의 과학자 1백40명이 집필한 이 책은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과학기술에 대한 묵직한 문제 제기다. 유감스럽게도 출간 15년 만에 지각 번역됐으니 그게 우리 지식사회의 한계다.

의연히 소중한 이 읽을거리를 최근 개봉한 스필버그의 'A.I' 와 함께 보면 어떨까? '사랑을 느끼는 인공지능 로봇' 을 다룬 비극적 스토리도 빼닮았다. 시원한 바람 건들거리는 가을 문턱, 알짜배기 정보와 친해져볼 일이다.

조우석 문화부 출판팀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