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 공정거래정책 유효한가] 전경련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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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현행 공정거래 제도와 운영에 대해 논란이 일고 있다. 공정거래위 출범 20년을 맞아 그 동안의 공정거래제도 운영을 평가하면서 과연 공정거래위가 본연의 업무인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 촉진' 에 충실한지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부처 안에서도 공정위가 확장경제 체제 시점의 제도를 유지하는 데 너무 집착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기업들은 과징금 부과가 지나치며, 경쟁촉진과 불공정 행위 예방이라는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조사가 잦고 경제환경 변화에 맞지 않는 규제가 많다는 반응이다. 때마침 재계, 특히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는 7일 '디지털 시대의 경제정책 개편과제' 란 연구 보고서에서 공정거래위의 경쟁정책이 전면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정거래 정책은 지금도 문제 투성이지만, 디지털 시대엔 더욱 그럴 것이다. "

전국경제인연합회(http://www.fki.or.kr)는 8일 '디지털 시대의 경쟁정책 개편 과제'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이같이 강조했다.

전경련은 평소에도 현행 공정거래 정책의 문제점을 줄기차게 지적해왔다. 현행 공정거래 정책은 재벌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한 경제력집중 억제에만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본연의 목적인 경쟁촉진에는 소홀했다고 주장해왔다.

가령 대표적인 경제력집중 억제 정책인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대기업들이 다른 산업에 진출하는 것을 정부가 나서서 가로막음으로써 경쟁을 오히려 저해시키는 정책이 되었다고 전경련은 비판했다.

전경련은 이런 평소 주장을 디지털 시대로까지 확대했다. 전통산업에서도 이렇게 문제가 많은데 상품.기술혁신이 급격하게 일어나고, 이로 인해 기업간 경쟁 양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디지털 시대엔 더욱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전경련은 공정거래 정책이 디지털 시대에 맞게 대폭 재편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전경련이 주관해 연세대 권명중 교수가 작성했다.

◇ 현행 공정거래 정책의 문제점=전경련은 그동안 경제력 집중 억제 정책은 오히려 경쟁을 저해하는 정책이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전경련은 공정거래법은 30대 그룹 지정과 출자총액제한 등 경제력 집중 억제정책을 없애고 경쟁촉진 정책으로 전면 탈바꿈해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이 보고서에서도 전경련은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디지털 경제에서도 맞지 않기 때문에 재검토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디지털 경제는 인터넷TV 등 복합 기능(퓨전)상품들이 대거 출현하는 등 인접한 사업 분야와의 통합이 잦은 시대라고 정의했다. 이런 시대에선 기업들이 사업 다각화를 할 수밖에 없으며, 따라서 업종 전문화를 추구하는 출자총액제한 제도는 재검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또 시장지배적 지위의 남용 금지나 기업결합의 승인 여부 등이 국민의 이익보다 경쟁자나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는데 치우쳐왔다고 주장해왔다.

전경련은 보고서에서도 "디지털 경제에선 독과점적 기업이 높은 이익률을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면서 시장지배적 기업이 상품 및 기술 가격을 올려받기 힘든 현행 규제를 재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또 기업결합을 제한하는 현행 규정도 디지털 경제에선 유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 어떻게 개편해야 하나=보고서는 디지털 경제에 맞는 새로운 공정거래 정책을 요구했다. '몇조 몇항이 바뀌어야 한다' 는 식으로 구체적으로 지적하진 않았지만 '새 법에는 새로운 개념' 이 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선 시장점유율과 같은 특정 시점에서의 수치로 기업결합을 승인하는 기준으로 삼거나 독과점 남용을 규제하는 근거로 삼아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시대엔 시장점유율이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에 한정된 인력을 가진 공정거래위가 파악하기엔 힘이 부칠 것이라며 새 법은 동태적인 경쟁 개념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현행 공정거래법은 경제력집중에 따른 자원배분의 왜곡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시장 분류도 새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령 인터넷 방송 서비스를 기존의 공중파 방송 서비스와 같은 것으로 분류하면, 공중파 방송 사업자가 인터넷 방송 서비스에 진출할 경우 공정거래법상 규제 대상이 된다.

디지털 경제에선 급격한 기술혁신이 일어나고 복합 기능(퓨전)상품이 나오는 시대라는 점을 감안해 시장 분류가 새로 짜여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김영욱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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