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에 겐자부로 "우익교과서 채택은 역사의 진실 거슬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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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도쿄도 교육위가 양호학교에서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가르치기로 한 것은 저항력이 가장 약한 상대를 겨냥한 편의주의적인 발상이다. " 일본 도쿄(東京)도 교육위원회가 정신지체 학생을 위한 양호학교 두곳에서 사용할 역사교과서로 우익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새역모)의 교과서를 채택한 데 대해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66)가 분노에 찬 목소리를 터뜨렸다.

아들 히카리(光.38)가 선천성 정신장애로 양호학교를 다닌, 장애인의 부모이면서 일본을 대표하는 지성인 오에는 '새역모' 교과서 검정과정에서도 반대의견을 밝힌 바 있다.

아사히(朝日)신문 인터뷰(8일자)에 응한 그는 "검정을 통과한 이상 어떤 내용의 교과서든 이를 채택하는 학교가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면서도 "그러나 '새역모' 교과서는 '일본은 뛰어나다'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 등의 생각을 강요하고 있어 어린이에게 좋은 책이 아니다" 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결정은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며 장애인에 대한 교육적 배려가 전혀 없다" 고 개탄했다.

오에는 "장애 어린이는 건강한 사람보다 공부하기가 더 힘들고, 교육비도 더 들어가는 점을 감안하면(교과서 채택에)영향력을 행사한 도쿄도 지사는 국제적 감각도 떨어지는 인물" 이라며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지사를 꼬집었다.

"시판된 '새역모' 책을 읽은 뒤, 실상을 안 부모들이 반성해 '새역모' 교과서 반대여론이 크게 일어났고, 그에 힘입어 지금까지 공립학교가 이 책을 선택하지 않았음에도 도쿄도 교육위가 이 책을 선택한 것은 이 흐름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것" 이라고 오에는 안타까워 했다.

그는 "오키나와(沖繩).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 등에서 '새역모' 교과서가 사용된다면 교사와 학생의 대화는 역사의 진실을 거꾸로 세우는 셈이 될 것" 이라고 걱정했다.

오에는 장애 아들을 키우면서 그의 정신과 문학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장애인 봉사활동에도 적극적이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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