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e-메일 경찰 손에…'일본판 에셜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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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내년부터 일본의 e-메일은 모두 경찰의 감시대상에 들어가게 되면서 '일본판 에셜론' 등장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에셜론이란 원래 미국의 주도로 서방 5개 동맹국들이 운영하는 전세계의 통신을 감청할 수 있는 자동화된 정보수집시스템.

일본 경찰청은 인터넷 접속업자들의 서버에 부착, e-메일을 24시간 자동 체크할 수 있는 특수장비에 대한 사양을 최근 관보에 고시하고 연내 16대를 도입키로 했다.

이는 지난해 8월 시행된 통신감청법에 의해 마약.매춘.밀입국 등 조직범죄에 대한 수사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지만 개인 사생활을 국가가 침해하는 것이란 반론도 거세지고 있다.

◇ e-메일은 모두 경찰청 거쳐야=경찰청은 일본 내 각 접속업자들의 서버를 통해 오가는 e-메일을 모두 경찰청의 감시용 서버를 통과하도록 할 계획이다.

경찰청은 미리 수사 또는 감시 대상자의 e-메일 주소를 입력해두고 자동으로 내용을 체크할 수 있게 된다. 범죄의 국제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 내의 e-메일뿐 아니라 외국과 주고받는 e-메일도 일본 접속업자의 서버를 거치는 것이면 모두 감시대상에 포함시킬 수 있다는 게 경찰청 입장이다.

경찰청은 지금까지 수사상 e-메일의 내용이 필요할 경우 일일이 접속업자에게 검색을 의뢰해야 했기 때문에 e-메일 감시를 통한 사전 사건인지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했다.

◇ 사용자 모르게 e-메일 열 수 있어=장비성능이나 활용범위가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경찰청은 접속업자 및 사용자도 모르게 e-메일을 자유자재로 열어볼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 정부나 기업이 일본측 서버를 통해 송수신하는 e-메일도 모두 감시할 수 있으므로 외교적으로 민감한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경찰청은 범죄의 수사나 예방에 국한, 영장을 발부받아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긴' 꼴 이라는 걱정이 높다. 따라서 경찰의 월권을 어떻게 감시.견제하느냐가 논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 시민단체 사생활 침해 반발=시민단체들은 사생활 침해론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공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범죄와 관련없는 개인의 통신내용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감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네크워크 반감시 프로젝트' 등은 "e-메일 자동체크는 경찰이 우체국에서 편지를 모두 뜯어보는 것과 마찬가지" 라며 사생활 파괴를 걱정했다.

◇ 어떤 장비인가=장비 명칭은 '통신사업자 대여용 가(假)메일박스' 다.

이 장비는 사용자간의 e-메일을 중계해주는 인터넷 접속업자의 서버에 부착돼 모든 e-메일 흐름을 자동적으로 경찰의 감시용 컴퓨터를 경유토록 한다.

e-메일은 인터넷 접속업자의 메일서버를 경유해 상대방의 PC에 전송되므로 이 장비로 e-메일이 송.수신되는 길목을 지킬 수 있고 따라서 쉽게 e-메일 감시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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