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례대표제 첫 단추부터 어긋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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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국당 김윤환(金潤煥)대표는 지난 2월 서울지법에서 징역 5년과 35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1996년 신한국당 대표 당시 비례대표 의원공천을 희망하는 사람에게 공천을 약속하고 정치헌금을 받았다는 혐의다. 金대표는 "대가성 없는 정치자금이었다" 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같은 경우는 빙산의 일각이란 지적이다. 비례대표 공천은 '직능대표 발탁' 이라는 포장 속에 이뤄지지만 그 이면엔 여러 부정적 이미지가 녹아 있다. 비례대표 의원들 스스로가 현행 공천관행의 문제점으로 '보스의 측근 발탁' '거액이 오가는 헌금 공천' '지역구 공천탈락자의 반발 무마를 위한 구제공천' 을 꼽았을 정도다.

16대 국회 비례대표 의원들의 경우 민주당 김방림(金芳林).조재환(趙在煥).박양수(朴洋洙)의원 등은 동교동계 출신이다. 당에 대한 기여도가 높게 평가된 경우로 알려진다. 같은 동교동계인 최재승(崔在昇).윤철상(尹鐵相)의원은 각기 이협(李協.익산).김원기(金元基.정읍)의원에게 지역구를 양보한 것에 대한 보상의 의미가 있다.

한나라당도 지역구 낙천자가 대거 비례대표 공천을 받았다.

박세환(朴世煥.대구 수성을).임진출(林鎭出.경주).조웅규(曺雄奎.고양 일산).박창달(朴昌達.대구 중).이원형(李源炯.대구 수성갑).이상희(李祥羲.부산 남)의원 등 6명은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했다.

여당에 비해 자금력이 열세인 야당의 경우 공천헌금을 통한 선거자금 마련 유혹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의 경우도 일부 비례대표 의원들이 이른바 '특별당비' 명목의 공천헌금을 약속했다는 소문이 당내외에 돌았다.

우리 정치에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것은 1963년. 각계각층의 전문성과 대표성을 입법과정에 반영하고, 사표(死票)를 막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박정희(朴正熙)대통령시절 권력유지를 위한 '유정회' 가 출현하면서 비례대표제가 크게 변질됐다. 당시 朴대통령은 유신헌법을 도입하면서 국회의원의 3분의1을 비례대표 형식으로 지명했다.

81년 11대 국회부터 현행 선출방식으로 전환됐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득표율을 높이기 위해 13대 총선(88년)에서 평민당 비례대표 11번, 15대 총선(96년) 국민회의 14번에 자신을 배치하는 벼랑끝 전술을 쓰기도 했다.

최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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