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윈도] 두얼굴의 콘딧의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게리 콘딧(35) 미 하원의원이 연방정부 인턴이던 챈드라 레비(24)의 실종 사건으로 드러난 양자의 불륜관계 때문에 미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두 얼굴의 사나이라고 부른다.

얼굴 하나는 장래가 촉망되는 원칙과 신념의 정치인이다.

민주당원인 콘딧은 한때 선거에서 자신이 "훌륭한 본보기(A Good Example)" 라는 캐치프레이즈를 사용했다.

경력만 보면 이 말은 맞다. 콘딧은 대학(캘리포니아 주립대 스타니스라우스 캠퍼스)을 졸업하자마자 세레스 시 자문위원에 당선됐다. 25세엔 시장이 됐고 그 후 군(郡)자문위원→주의원→연방하원의원(6선)이라는 출세 가도를 달렸다.

침례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콘딧은 의회에서도 성경공부에 열심이었고 절대금주론자였다. 빌 클린턴 대통령과 모니카 르윈스키의 스캔들이 양파껍질처럼 벗겨질 때 그는 클린턴에게 "모든 사실을 한꺼번에 털어놓으라" 고 호통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얼굴 뒤에는 다른 얼굴이 숨어 있다. 콘딧은 고교에 다니면서 지금의 아내인 캐럴린과 만났다. 18세였던 졸업반 시절 그녀가 임신하자 콘딧은 절차가 엄격하지 않은 다른 카운티로 가서 나이를 25세라고 속이고 결혼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콘딧의 여인들은 레비와 스튜어디스인 앤 스미스, 그리고 10대 때 콘딧과 관계를 맺은 흑인여성 등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르윈스키' 가 나올지 모른다. 스미스는 최근 10개월간의 관계를 공개하면서 "콘딧은 아내가 매우 아프며 곧 부부관계가 청산될 것이라고 했다" 고 폭로했다. 콘딧의 아내는 건강하며 이혼할 계획도 없었다.

레비는 실종되기 직전인 지난 5월 1일 인터넷으로 자신의 워싱턴 아파트 인근 공원의 지도를 검색했다는 사실을 경찰은 밝혀냈다. 레비가 5월 1일 아파트를 나설 무렵 콘딧은 캘리포니아 전력난을 논의하기 위해 딕 체니 부통령을 만난 것으로 확인돼 일단 살인혐의는 벗게 됐다.

하지만 설사 콘딧이 레비의 실종과 관계가 없다 해도 그의 정치생명은 위기에 처했다.

지역구(캘리포니아 모데스토) 유권자 60% 이상이 이 일로 그가 사퇴하는 것은 반대하지만 다음 번에 또 찍지는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 입으로 두 말하는 정치인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