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 '구텐베르크의 가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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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9면

로마 교황청의 타락이 극에 달하던 15세기 중엽.

권력과 부에 눈이 먼 교황과 그를 암살하고 새로이 권좌를 차지하려는 무리들의 세력다툼. 이들에게 면죄부는 자금 마련의 매력적 수단이었다.

그 면죄부를 단 며칠 내에 10만부쯤 만들어낼 수 있다면?

사실 지난 1천년 동안 인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문화사적 사건인 금속인쇄술의 발명은 바로 여기에 얽혀 들어갔던 '고리' 였다.

그 인쇄술을 가진 자와 그를 이용하려는 권력의 추종자들이 독일의 마인츠와 비잔틴제국의 콘스탄티노플, 그리고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공화국 등 당시 유럽 중심부를 무대로 쫓고 쫓기며 펼쳐지는 역사로망이 신간『구텐베르크의 가면』이다.

독일어 원제는 '거울 세공사(Der Spiegelmacher)' .구텐베르크는 소설 초반에 주인공이 마인츠를 떠나고 마지막에 감옥에 가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드는 교활한 인물로 묘사된다.

기자 출신의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필리프 반덴베르크는 이 작품에서도『파라오의 음모』『미켈란젤로의 복수』등 전작에서처럼 역사와 허구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자의 시선을 붙들어 맨다.

마인츠 태생의 구텐베르크가 서구에서는 최초로 금속활자본 성서를 찍어냈다는 역사적 사실에, 실은 교활한 구텐베르크가 스승이었던 거울 세공사의 기술을 훔친 것이라는 작가적 상상의 결합이 소설의 기본 토대를 이룬다.

사랑과 배신, 음모와 살인, 세계 전복을 꿈꾸는 신비주의 종교 등 멜로와 스릴러적 요소가 재미를 더한다.

소설은 마인츠의 성당 지하실에 40년째 감금돼있는 주인공 미헬 멜처가 벽에 뚫린 구멍을 통해 옆방의 동료에게 자신의 기구한 운명을 들려주고 대신 기록해 전달하는 액자소설의 형식. 뛰어난 거울 세공사에 불과했던 멜처가 벙어리 딸 에디터를 결혼시키기 위해 콘스탄티노플에 갔다가 우연히 중국인들의 점토활자를 이용한 인쇄술을 전수받게 되면서 로마 교황청을 둘러싼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든다.

자신의 금속 가공술을 이용해 내구성이 더 뛰어난 금속활자를 발명하게 된 멜처, 미인계로 멜처를 끌어들이려던 세력의 하수인이었다가 그와 진짜 사랑에 빠진 여인 시모네타, 그리고 아버지가 자신을 돈 때문에 팔려 했다는 오해를 끝내 풀지 못한 채 숨을 거두는 에디타의 운명이 얽히고 설킨다.

금속인쇄술의 엄청난 의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이 작품은 여러가지 면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연상시키지만 그에 비해 인문적 깊이와 긴장감은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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