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샘] 상주 작곡가제 도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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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최근 재독 작곡가 진은숙(陳銀淑.40)씨가 베를린 도이체심포니(음악감독 켄트 나가노)의 상주작곡가로 선임된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에도 상주작곡가 제도의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한국 작곡가들이 세계무대에선 환영을 받는 데 반해 국내에선 푸대접을 받고 있다는 반성과 함께.

'상주작곡가(常住作曲家.composer-in-residence)' 란 글자 그대로 교향악단 등 연주단체나 공연장의 소재지에서 1~2년간 머물며 생활비 전액을 받고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유럽과 미국에선 오래 전부터 보편화돼 있는 제도다. 대개 생활비의 절반은 악단이 부담하고 나머지 절반은 정부 보조로 충당한다. 연주자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면서 상호 이해를 높여 레퍼토리로 남을 만한 관현악곡을 탄생시키는 게 그 목표다.

50곡이 넘는 교향곡을 발표한 미국 작곡가 앨런 호바네스(1911~2000)는 뉴잉글랜드 음악원 졸업 직후 시애틀심포니의 상주작곡가로 활동했다.

지난해 영화음악 '레드 바이올린' 으로 그래미 음반상에서 4관왕을 차지한 작곡가 존 코릴리아노(63)는 1987~90년 시카고심포니의 상주작곡가로 활동했고, 영국의 신예 작곡가 마크 앤서니 터니지(41)도 89~93년 5년간 버밍엄심포니에서 관현악의 기초를 갈고 닦았다.

국내의 경우 문예진흥원 창작 활성화 기금 등 창작 관현악곡에 대한 지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작곡가들이 대학 교수를 겸하면서 어쩌다 작품 위촉이 들어오면 방학을 이용해 벼락치기로 완성, 초연이 끝난 후에는 무대에서 금방 잊혀지고 만다. 창작의 활성화를 위해 이제 일회성 지원보다 상주작곡가 제도를 도입하는 교향악단에 창작 지원금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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