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나] 김지룡 일본문화평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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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내 첫 사랑은 만화다. 6살 때 만화를 처음 접했다.

그리고 나이 40이 다된 지금까지 30년이 넘도록 만화를 읽고 있다. 만화장르에 대한 편견을 키우고 있는 우리 사회의 통념과 달리 만화 사랑은 나이 들수록 깊어져만 갔다.

드디어 나는 만화를 만들기 위해 올해 초 회사까지 세웠다. 회사의 이름은 '놀다' . 회사의 특성상 주로 젊은 사람들과 일하고 있다.

어른들은 요즘 젊은애들이 성실하지 못하다고 혀를 끌끌 차지만, 나는 오히려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은 해고시킨다. 나는 이 방식이 옳다고 믿는다.

대안교육 전문 출판사인 '민들레' 에서 발간하는 같은 이름의 잡지나 『자퇴일기』 같은 단행본을 읽으면서, 어른들 눈에 불가사의하게 보이는 젊은 세대들의 행동은 '문제' 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서의 '문화' 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거창한 사회적 의미보다 작은 개인적 재미를 더 소중히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와 일을 하려면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방식에 대한 영감은 조한혜정 교수를 통해 얻었다. 80년대 후반 『평등한 부모 자유로운 아이』(또하나의문화)라는 책을 읽은 이후로 조한 교수의 열렬한 팬이다.

조한 교수는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또하나의문화)란 책에서 "일과 놀이를 엄격하게 분리 시키는 대량생산체제에서 벗어나, 일과 놀이와 학습을 한꺼번에 이루는 다품종 소량 생산체제로서의 교육이 필요하다" 고 말한다.

나는 '만화를 만들고 싶어서 미치겠다' 는 젊은 사람들을 뽑았다. 그들에게 일은 신나고 즐거운 것이다. 성실한 사람을 기피하는 것은, 성실함이란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만 가치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또한 조한 교수는 "배움에는 때가 있다는 말은 맞지만 그 '때' 는 자신이 하고 싶은 때" 라고 말한다. '놀다' 에는 출근의 의무가 없다.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곳에서 일하면 된다. 물론 결과가 좋지 않으면 잘리지만….

이밖에 『마인드 트렌드 보고서』(세종서적)란 책에 '21세기에는 사람들이 민족국가가 아니라 같은 문화와 가치관을 공유하는 부족에게 충성을 서약하게 될 것' 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는 '놀다' 를 만화라는 재미를 공유하는 사람들의 부족으로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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