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피부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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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生靈)이 된지라…. " (『구약성서』「창세기」 2장7절).

신이 흙으로 인간을 빚었다는 것이 기독교의 가르침이다. 인간의 상상력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피부색이 서로 다른 인종의 기원까지 확장된다.

신이 인간을 빚어 굽는 과정에서 너무 빨리 꺼내 덜 구워진 것이 백인이고, 실수를 고려해 충분히 굽다가 새까맣게 타버린 것이 흑인이라는 것이다.

두 번에 걸친 실패를 거울 삼아 적당히 구워낸 걸작이 황인종이라는 마지막 설명에 이르면 황인종 우월론자의 썰렁한 농담임이 자명해진다.

유머가 사라진 자리를 과학이 대신하면서 피부색의 차이는 멜라닌 색소의 차이에서 온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 됐다.

피부의 맨 밑에는 멜라닌사이트라고 하는 세포가 있고, 이 세포에는 멜라닌 색소를 함유한 미세한 주머니인 멜라노좀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피부색을 결정한다는 것이다. 멜라노좀이 상대적으로 크고, 많을수록 피부는 검정색에 가까워진다.

창조론이나 진화론 어느 쪽에 서든 인류가 시작된 이후 유전과 변이, 이주와 혼혈이 반복되면서 피부색이 서로 다른 5종의 대표적 인종이 자리잡게 됐다는 데는 같은 의견을 보인다.

즉 코카소이드라고 하는 백인, 몽골로이드라고 하는 황인, 니그로이드라고 하는 흑인, 아메리카 인디언으로 대표되는 홍인, 말레이인종을 가리키는 갈색인이다.

피부색이 미추(美醜)와 우열(優劣)의 기준과 종종 혼동되면서 유사 이래 인종간에는 수많은 갈등과 비극이 생겨났다. 그래서 유엔은 '인종차별철폐 협약' 까지 만들었다. 피부색과 인종의 차이에 따른 어떤 종류의 차별에도 반대한다는 국제협약이다.

그러나 유색인종에 대해 우월감을 느끼는 백인이나 백인종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유색인종이 아직도 존재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멜라닌 색소 결핍에서 생긴 백반증 때문에 고생한 마이클 잭슨을 백인 동경주의자로 몰아붙이는 소문은 그런 현실의 반영이다.

피부색에 따른 인종구별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신약이 개발됐다는 소식이다.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멜라닌 색소 생성을 억제 또는 촉진하는 물질을 개발, 동물실험 중이라고 한다. 지속적으로 이 크림을 바르면 흑인도 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탈아입구(脫亞入歐)' 를 부르짖어온 일본인들에게 가장 반가운 소식이 될 것 같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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