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논단] 고이즈미 인기와 주가하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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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지지율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도쿄(東京)주가가 하락하는 등 불황에 대한 우려는 한층 깊어지고 있다.

지지율과 주가의 차이는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하려는 구조개혁에 대한 기대치와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 고이즈미 총리가 추진하는 개혁의 내용이 확실해지면 그 차이가 없어지는 움직임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지지율이 주가에 끌려 내려갈 가능성도 있는 것 같다.

여론은 지금 "구조개혁이 없다면 경기회복도 없다" 는 고이즈미 총리의 자세에 많은 지지를 보내고 있다. 스스로 솔직하게 경기악화를 인정하고 국민에게 고통을 참아줄 것을 호소하는 고이즈미 총리의 자세에 공감하는 일본 국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고이즈미 총리와 주변 인사들은 "3년은 참을 수밖에 없다" 고 공언하고 있다. 그리고 과감하게 개혁을 추진해도 여론이 그들을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엔화 약세를 유도해 외수(外需)를 활성화시켜 어떻게든 경기를 유지해 가면서 부실채권을 근본적으로 정리하려는 것이 고이즈미 정부의 전략인 것으로 여겨진다. 또 구조개혁의 일환으로 일본 국내에 있는 외국기업의 사업확대에 힘을 쏟아 미국 등의 불만을 억제하려는 정책을 펼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미국이 일본의 '엔 약세 노선' 을 용인할지 거부할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의 경기가 급속하게 악화된다면 다시 금융위기가 오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고이즈미 총리도 금융위기에 대비해 대응책을 검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위기가 다시 발생한다면 구조개혁과 경기대책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이냐를 놓고 치열한 논란이 또 벌어질 것은 확실하다.

자민당 내부에서도 "올 가을에는 경제가 더욱 악화돼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정책에 물음표가 붙여질 것이다. 그 때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해도 된다" 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는 구조개혁을 단행하기 위해 중의원 해산이나 정계개편도 불사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흘리고 있다.

지금은 나가다초(永田町.일본 정계를 뜻함)와 가세미가세키(霞か關.일본 관계를 뜻함)내의 '저항세력' 이 고이즈미 총리의 기세에 눌려있는 것 같다. 그러나 바람의 방향이 달라져 고이즈미 총리에 대한 여론의 지지가 없어진다면 '수구파' 가 거세게 반발하는 상황도 예상할 수 있다.

고이즈미 정부가 지난 4월 출범한 후 지금까지는 여론과 정권의 밀월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이전에는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지만 지금은 마치 그런 정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인상마저 주고 있다. 여론 주도의 정치상황이 탄생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그러나 여론정치는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잘 변하는 여론에만 의존할 뿐 허리가 안정되지 않은 정치가 계속돼서는 매우 곤란하다. 경제위기가 발생해 경기대책을 촉구하는 여론이 많아져도 구조개혁 노선을 수정하지 않고 대처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고이즈미 총리는 지금부터라도 지지율 급락이라고 하는 '고통' 을 각오하는 것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다치하라 시게키 - 지지(時事)통신 정치부장/7월 10일자 '세계주보'-

정리 = 오대영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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