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체류 목적 동남아인 러시…인천공항 '색출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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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12일 오전 6시15분 인천국제공항 입국심사대. 싱가포르 항공을 타고 막 도착한 20대 파키스탄인 관광객 다섯명과 입국심사원간에 입씨름이 벌어졌다. 아마드(25)와 부인 아이샤(23), 한살배기 아들과 형(53).동생(18) 등 이들은 꼬치꼬치 캐묻는 입국심사원에게 "바캉스를 왔다. 하루 32만원짜리 신라호텔을 예약했다" 고 목청을 높였다.

그러나 조사 결과 이들이 가진 돈은 다 합쳐서 2천달러(약 2백60만원)에 불과했고,가족의 생일조차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결국 가짜 가족으로 판명나 이들은 이날 낮 파키스탄으로 강제송환됐다.

외국인 불법체류자들이 최근 급증하면서 인천공항 등에서는 불법 입국하려는 외국인들과의 전쟁이 한창이다.

출입국관리소측은 잠복조까지 운영하며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주로 동남아인들인 이들의 위장술이 갈수록 다양해져 색출에 애를 먹고 있다.

◇ 기발한 위장수법〓지난 9일 오후 입국심사대 앞에서 방글라데시인 카심(40)이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동생 카림(32)이 "형의 암치료를 위해 입국한다" 며 경기도 구리 원자력병원 趙모 박사의 초청장과 의료기록을 꺼내보였다.

수상하게 여긴 심사요원은 趙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진짜 환자는 어제 벌써 입국해 입원했다" 는 사실을 확인했다. 다른 사람의 초청장을 위조하고 기내에서 흥분제를 먹은 뒤 꾀병까지 연출했던 형제는 곧바로 추방됐다.

같은 나라 A씨(35)는 지난해 6월 투자목적으로 한국 체류자격을 얻어 입국했다. 당시 부인과 함께 온 그는 지난 2월 한국 여성(30)과 결혼, '가족 동거' 로 체류자격 변경신고를 했다. 이후 지난 6일까지 동생과 조카를 차례로 초청, 입국시켰다가 출입국관리소에 적발됐다. 일가족 불법이민을 위해 위장결혼을 한 것.

인천공항 출입국관리소 간부는 "브로커 등을 동원해 가족들을 불러들이는 사례도 요즘엔 거의 매일 발생한다" 고 말했다.

◇ 단속 강화=공항 출입국장이나 대합실에는 매일 사복차림의 조사관 24명이 순찰을 하며 의심이 가는 외국인을 감시한다.

인천공항 개항 이후 출입국신고 전산화, 단체여행객 사전신고제 등 출입국 절차가 간소화돼 불법입국자 적발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출입국 심사요원도 4백87명으로 김포공항 때보다 87명을 늘렸다.

◇ 늘어나는 불법입국=지난해 공항에서 적발돼 추방된 입국 거부자는 여권 위.변조범을 포함해 2만7천여명. 올 들어서도 벌써 1만3천여명이나 된다. 그중 절반이 5월 이후 발생했다. 출입국관리소측은 "많은 날은 하루 1백50명이 강제송환된다" 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법체류자는 지난해 말 18만8천여명에서 이달 현재 21만6여천명(법무부 추산)으로 3만명 정도 늘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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