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CEO의 한식 만들기 <7> 마이클 베터 포르셰코리아 대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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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베터 포르셰 코리아 대표가 직접 만든 갈비탕을 선보이고 있다. [오상민 기자]

“국물 맛이 진하게 우러난 갈비탕은 언제 어디서 누구랑 먹어도 맛이 끝내줍니다. 뜨끈한 국물에다 공깃밥을 말아 깍두기 김치까지 얹어 먹으면 그야말로 ‘굿 매치’(good match)죠.”

포르셰코리아 마이클 베터(41) 대표는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갈비탕을 찾는 애호가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출신인 그가 갈비탕을 처음 맛본 것은 10년 전 출장차 한국에 왔을 때다. 당시 포르셰 아시아-태평양 본부 마케팅 담당 매니저로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던 베터 대표는 한국에서 급성장하고 있던 고급 스포츠카 시장을 조사하기 위해 자주 방한했다고 한다.

“바쁜 일정을 소화하느라 정신없던 차에 우연히 직장 동료와 함께 갈비탕을 시켜서 먹었는데 먹자마자 몸에서 새 기운이 솟아나는 듯했습니다. 함께 곁들여 나오는 매콤한 김치와 콩자반 등 갖가지 밑반찬도 제 입맛에 딱 맞았습니다. 마치 다이아몬드 광산에서 가장 빛나는 보석을 찾은 느낌이었어요.”

2005년 한국에 부임한 베터 대표는 그 뒤 맑고 담백한 국물 맛을 잊지 못해 갈비탕의 매력에 푹 빠져버렸다. 요즘도 점심때 햇반과 김을 곁들인 한식 도시락을 자주 싸온다는 그는 “갈비탕을 직접 만들 수 있으면 보온병에 담아서라도 도시락으로 가져오고 싶다”고 말할 정도다.

노란색 포르쉐 911 터보 스포츠카를 직접 몰고 나타난 베터 대표가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의 정영효 주방장의 도움을 받아 갈비탕 만들기에 도전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사리로 넣을 당면을 미지근한 물에 넣어 불린 뒤 쇠 갈비짝을 도마에 올려놓고 손질하기 시작했다.

정 주방장이 “담백한 국물을 맛을 내기 위해선 고기에서 기름진 지방 성분을 최대한 떼는 것이 좋다”고 설명하자 베터 대표는 “열량이 낮아 웰빙 음식으로도 손색이 없네요”라고 화답했다. 갈빗살이 함께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기름기 있는 부위를 얇게 떼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고 정 주방장이 “꼼꼼하다”고 칭찬했다. 그러자 그는 “자동차 산업 역시 직원들의 꼼꼼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수많은 기계가 쓰이지만 포르셰만 해도 주요 부품은 모두 핸드 메이드(수제품)입니다.” 요리나 자동차 생산 모두 만든 이의 꼼꼼하고 섬세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갈비를 토막낸 뒤 고기의 피를 빼기 위해 찬물에 잠시 담가 두었다. 뚝배기에 찬물을 넣고 피가 빠진 갈비와 무·마늘 등을 함께 넣고 센 불에 끓이기 시작했다. 이어 고명으로 올릴 지단을 만들기 위해 달걀을 깨서 흰자와 노른자를 분리했다. 베터 대표가 “한국 음식에 고명을 많이 넣는 이유가 뭐냐”고 묻자 정 주방장은 “보기에 좋은 음식이 먹기에도 좋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갈비탕이 펄펄 끓는 동안 베터 대표는 평소 한식 세계화에 대해 느꼈던 생각을 털어놨다. “한식을 먹어보면 한국 사람들의 정과 마음 씀씀이까지도 엿볼 수 있습니다. 한 식탁에서 함께 음식을 정겹게 나눠 먹는 모습이 바로 그것이죠. 한식을 해외에 알릴 때에 이 같은 한국 문화도 함께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한국의 맛과 멋을 동시에 알리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안타깝게도 독일만 해도 대도시를 벗어나면 한식당을 쉽게 찾을 수 없다”며 “한식당을 찾으려면 미리 인터넷에서 검색한 뒤 지도를 보고 가야 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한식당을 최대한 많이 열어 사람들의 눈에 띄게 해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는 “포르셰가 현재의 모습처럼 성장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한식 세계화도 지금부터 서두르지 않고 하나씩 차근차근 이뤄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갈비탕이 완성되자 첫 국물 맛을 떠본 베터 대표는 “한식 만들기도 직접 배워보니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며 “다음엔 꼭 혼자서 만들어보겠다”고 다짐했다.

이은주 중앙데일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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