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헤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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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위진 시대 중국의 '삐딱이' 7명은 쉬파리 꼬이는 거품 정치에 등을 돌린 채 술과 시로 세월을 낚았다.

이 죽림파를 두고 '먹물' 들의 도피적 처세라고 나무랐던 이는 루쉰(魯迅)이었다. 지하의 죽림파가 들으면 섭섭해 했을 말이다.

시민사회 형성 이전, 즉 근대 이전의 먹물들은 기본적으로 사회적 선택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이 땅에도 죽림파가 존재했다. 조선 초기 동대문 밖에 모여 거문고를 뜯으며 애써 신선임을 자처했던 청담파(淸談派) 말이다.

이번에는 해방 이후. 지식인들은 '운동으로서의 죽림' 을 실험했다. 문동환 목사 중심의 수유리 '새벽의 집' , 사회사업가 장기려 박사의 부산 청십자운동, 철학자 박종홍의 신생숙 등이 그것이다.

김진홍 목사의 활빈교회(현 두레마을), 농사꾼 철학자 윤구병의 변산공동체도 같은 맥락이다. 앎과 삶을 일치시키려는 아카데미 운동, 혹은 공산(共産)과 녹색을 목표로 한 공동체 실험들이다. 허깨비 정치판과 거품 세월 속에서 거둔 이마만한 열매에 우리는 위안을 얻는다.

그러나 세상은 다시 바뀌고 있다. 그 변화 징후의 코드네임이 '헤이리' 다. 최근 경기도 파주 현지에서 기공식을 가진 헤이리 아트밸리 말이다.

파주지방의 농요(農謠)에서 따온 헤이리는 '삶의 질과는 담을 쌓은 살풍경' 에 다름아닌 이 시대의 얼굴과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공동체다. 어수선한 세상 사람들 정신이 붕 떠 있어 그렇지 실은 모색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신 유토피아 운동이다.

헤이리가 왜 대안의 삶일까? 통일동산 내 15만평에 '인간과 자연이 넘나드는 문화의 공간' 을 위해 삽질을 시작한 이들은 문화.학계의 3백여명이다. 박노해, 윤후명, 임옥상, 박여숙, 이기웅, 정태춘.박은옥 부부 등 이름만으로도 뜨르르한 이들은 나홀로 삶에 오래 익숙해 왔다.

죽림파 못지 않은 삐딱이들인 3백명이 공생의 삶에 발을 담근 것이다. 목표는 '규모가 커진 동호인 마을' 이 아니다. 전쟁 나면 포탄밥이 될 첫 동네라던 이곳에 남북을 잇는 문화벨트의 거점을 만들자는 것이다.

2002 월드컵 개막에 맞춰 이곳에 들어설 수십개의 갤러리.서점 등 문화단위들과 살림집들은 의미있는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이 기대된다. 냉소와 방관에서 벗어난 집단적 대안운동에 거는 기대는 그 때문이다.

자연을 뭉개고, 문화와 담쌓고 사는 흉물스런 우리 시대에 미래를 앞당기는 것은 다름아닌 이런 몽상가들이다. 나홀로 각개약진이 아니라, 집단적 모색을 하는 몽상가 말이다.

조우석 출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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