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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반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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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존 케리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의 슬픔이 계속되고 있다. 영화 '화씨 9.11'로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조롱했던 마이클 무어 감독은 5일 자신의 웹사이트에서 "자살하지 말라"는 말로 심경을 대신했다. 12개 도시를 다니며 케리 지원 연설을 했고 부시 낙선을 위해 1700만달러(약 188억원)를 썼던 조지 소로스도 "슬프다"는 말을 남겼다.'일방주의의 화신 부시 대통령'을 열린 사회의 적으로 규정하며, 특히 "부시에게 속았다"는 내용의 '미국 패권주의의 거품'이란 책까지 낸 소로스의 아픔은 진짜 컸을 것이다. 반(反)부시 서적 판매가 갑자기 는다는 소식도 있다. 선거 직전까지 언론들이 케리 승리를 점쳤고 민주당 인사도 이겼다는 전제 아래 우리 외교부 당국자를 만날 약속을 했는데 결과가 패배로 나타나니 그 쓰라림이 짐작된다.

그런데 케리 패배의 원인을 분석한 '보수가 미국민을 사로잡은 이유'라는 책으로 선거 직후 아마존 닷컴 베스트셀러 저자에 오른 토머스 프랭크는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민주당의 이런 슬픔에 코웃음 쳤다.

그는 이번 대선 결과를 '보수의 반란'이라 했다. 사실 37대 리처드 닉슨 대통령 이후 여덟번의 대선에서 다섯번을 보수 공화당이 이겨 '보수의 반란'이라고 하는 건 이상하다. 그건 역설이다. 다 잡았던 승리의 기회를 날려버린 케리에 대한 분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36년 전 공화당 닉슨 대통령 당시 스피로 애그뉴 부통령이 "리버럴들은 뉴스를 왜곡하는 자"라고 비난한 이래 거의 모든 선거에서 리버럴리즘은 깃발을 태우고, 배반을 종용하며, 상류사회인 척하는 태도로 낙인 찍혔다.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민주당의 케리가 리버럴한 태도를 못 버려 거의 잡았던 승리를 놓쳤다는 것이다.

더 아픈 것은 "리버럴들이 현실에 대해 말을 하지만 미국민이 중시하는 가치나 전통에 대한 고려는 없다"는 질타다. 유권자가 중시하는 전통주의, 기독교적 경건성, 공동체적 가치 등 도덕의 문제를 외면하고 현실 문제에만 집착해 보수를 뭉치게 하고 '반란'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의미다.

프랭크의 지적엔 반추할 만한 시사점이 있다. '우리 정치권의 리버럴들은 현실을 말할 때 지킬 만한 우리의 가치와 전통을 얼마나 고려하는가' 하는. 최근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여권이 패한 것은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조금은 보여주는 게 아닐까.

정치부 안성규 차장